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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평양 세차례 찾아 ‘남북기본합의서’ 서명

입력 | 2020-04-13 03:00:00

정원식 前국무총리
노태우 정부서 총리-문교장관… 김일성과 만나 남북관계 논의
전교조 불법단체로 규정해 해직… 대학 강의갔다 밀가루 봉변도




12일 별세한 정원식 전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 김일성 국가주석을 접견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낸 정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세 차례 방북 끝에 김 주석과 면담한 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동아일보DB

12일 별세한 정원식 전 국무총리는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과 제23대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스스로를 ‘평생 교육인’으로 불러왔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후인 1948년 가족을 북한에 두고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홀로 상경했다. 대학생 시절 6·25전쟁이 터지자 육군 장교로 복무한 정 전 총리는 1955년 대위로 예편한 뒤 미국 유학을 거쳐 1961년부터 모교인 서울대 사범대 조교수로 임명되며 교육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정 전 총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학 진학 전 목사가 되기를 원한 모친의 권유에 “‘사회의 목자가 되겠다’며 교육자의 길을 택했다”며 “뜻하지 않게 공직의 길에 들어섰지만 평생 교육인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의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서울대 사범대 학장을 지내는 등 교육학자로 활동하던 정 전 총리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며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정 전 총리는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되자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탈퇴하지 않은 전교조 교사들을 해직하는 등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전교조 중심 교사들이 다 서울대 사대를 나온 제자들이었다”며 “전교조 교사를 해직시킨 일이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문교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국외국어대에서 다시 교단에 선 고인은 1991년 5월 국무총리로 지명되자 고별 강의를 하러 갔다가 “전교조 선생님들을 살려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에게 포위돼 20분간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총리 재임 기간 고인의 가장 큰 업적으로는 남북관계의 기본 장전(章典)으로 평가되는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이 꼽힌다. ‘북방외교’를 내건 노태우 정부가 소련, 중국과의 수교 추진을 본격화한 가운데 정 전 총리는 세 차례 직접 방북해 김일성 국가주석과의 면담, 북한 연형묵 총리와의 고위급 회담을 거쳐 1991년 12월 13일 남북화해와 불가침, 남북교류 협력의 원칙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1992년 총리에서 물러난 고인은 서울대 동문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자 선거대책위원장을 거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첫 시도지사 선거 때는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이후 고인은 대한적십자사 총재, 유한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교육, 청소년, 복지 문제에 힘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학영 여사와 딸 신애 은혜 수영 현주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8시 대전현충원. 02-3010-2295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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