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식 前국무총리 노태우 정부서 총리-문교장관… 김일성과 만나 남북관계 논의 전교조 불법단체로 규정해 해직… 대학 강의갔다 밀가루 봉변도
12일 별세한 정원식 전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 김일성 국가주석을 접견하고 있다. 노태우 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낸 정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세 차례 방북 끝에 김 주석과 면담한 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동아일보DB
일제강점기인 1928년 황해남도 재령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후인 1948년 가족을 북한에 두고 서울대 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홀로 상경했다. 대학생 시절 6·25전쟁이 터지자 육군 장교로 복무한 정 전 총리는 1955년 대위로 예편한 뒤 미국 유학을 거쳐 1961년부터 모교인 서울대 사범대 조교수로 임명되며 교육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정 전 총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학 진학 전 목사가 되기를 원한 모친의 권유에 “‘사회의 목자가 되겠다’며 교육자의 길을 택했다”며 “뜻하지 않게 공직의 길에 들어섰지만 평생 교육인이라고 생각하고 교육의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서울대 사범대 학장을 지내는 등 교육학자로 활동하던 정 전 총리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며 공직의 길에 들어섰다. 정 전 총리는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되자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탈퇴하지 않은 전교조 교사들을 해직하는 등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고인은 한 인터뷰에서 “전교조 중심 교사들이 다 서울대 사대를 나온 제자들이었다”며 “전교조 교사를 해직시킨 일이 가장 힘들었던 일”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문교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한국외국어대에서 다시 교단에 선 고인은 1991년 5월 국무총리로 지명되자 고별 강의를 하러 갔다가 “전교조 선생님들을 살려내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대학생들에게 포위돼 20분간 계란과 밀가루 세례를 받는 등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1992년 총리에서 물러난 고인은 서울대 동문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자 선거대책위원장을 거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첫 시도지사 선거 때는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주자유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낙선했다. 이후 고인은 대한적십자사 총재, 유한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교육, 청소년, 복지 문제에 힘썼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학영 여사와 딸 신애 은혜 수영 현주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14일 오전 8시 대전현충원. 02-3010-2295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