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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기 인사법’ 하이파이브, 코로나로 야구장서 퇴장하나

입력 | 2020-04-14 03:00:00

1977년, 베이커 홈런치고 돌아오다
대기타석의 버크, 손 높이 쳐들자 엉겁결에 동료의 손을 때려 ‘탄생’
매년 4월 세번째 목요일 국가적 행사로 기념할만큼 대중적
베이커 “시즌 시작되면 금지할듯”




1977년 10월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글렌 버크(왼쪽 사진 왼쪽)와 더스티 베이커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모습이 기록으로 남은 건 이때가 처음이다. 오른쪽 사진은 베이커가 2014년 ESPN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는 모습. ESPN 다큐멘터리 더 하이 파이브 화면 캡처

1977년 10월 2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

안방팀 LA 다저스 3번 타자 더스티 베이커(71·현 휴스턴 감독)가 6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홈런을 날렸다. 베이커의 시즌 30번째 홈런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나온 이 홈런으로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0홈런 쿼텟’(홈런이 30개 이상인 타자 4명)을 달성한 팀이 됐다.

베이커가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돌고 오자 대기 타석에 있던 글렌 버크(1952∼1995)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베이커도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버크의 손을 때렸다. ‘하이파이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이파이브는 이제 미국에서 해마다 4월 세 번째 목요일(올해는 16일)을 ‘내셔널 하이파이브 데이’로 기념할 정도로 인기 있는 인사법이 됐다. 2002년 버지니아대 학생들이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전파하자며 온종일 하이파이브를 한 데서 기념일이 됐다.

베이커는 2014년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솔직히 버크가 손을 들었을 때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보통 주먹이나 팔꿈치를 서로 부딪치면서 기쁨을 나눴기 때문이다. 어쩐지 손바닥을 부딪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그렇게 했다”면서 “사람들이 ‘당신이 하이파이브를 발명했다’고 말할 때마다 ‘아니야. 글렌이 판을 벌였고 나는 그저 장단을 맞췄을 뿐’이라고 답한다”며 웃었다.

그러나 이제 적어도 메이저리그 경기장에서는 하이파이브를 보기 쉽지 않을지 모른다. 베이커는 12일 스포츠 전문 매체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올 시즌이 개막하게 되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염 우려 때문에 하이파이브를 금지하게 될 확률이 높다”면서 “어쩌면 하이파이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다. 미국프로농구(NBA)는 이미 코로나19로 일정을 중단하기 전 선수들에게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지 말라고 권고했다. 손바닥을 통해 바이러스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NBA 사무국은 대신 주먹을 맞부딪치라고 제안했다. 12일 개막한 대만 프로야구에서도 선수들은 신체 접촉을 피하기 위해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았다.

다시 예전 하이파이브 얘기로 돌아가자. 역사상 두 번째 하이파이브가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베이커에 이어 타석에 들어선 버크가 연속 타자 홈런이자 개인 통산 1호 홈런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크가 하이파이브를 배운 곳은 어디였을까. 확실하지는 않다. 버크는 흑인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1982년)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였다. 이 때문에 하이파이브가 동성애자 사이에서 유행하던 인사법이었다고 설명하는 이들이 있다. 백인이 흑인과 악수하는 걸 꺼려서 나온 인사법이 당시 흑인들 사이에 최신 유행으로 떠오른 상태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버크가 다저스를 떠나 오클랜드로 트레이드된 뒤 만 27세에 메이저리그를 떠난 것은 동성애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가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던 그 손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이들의 기쁨과 항상 함께해 왔다. ‘애프터 코로나19’ 시대에는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