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0주년 기획/동아일보 100년 문화주의 100년] <4> 문단의 별을 발굴하다
동아일보는 창간 이후 역량 있는 신인 발굴을 위해 문학작품을 현상공모했다. 사진은 신춘문예를 비롯한 본보의 각종 문예작품 공모에서 수상한 문인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동리 심훈 황순원 최명희 정비석 은희경 이근배 박완서. 가운데 사진은 1925년 1월 2일 본보의 첫 신춘문예 모집 공고. 동아일보DB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겸임교수
동아일보는 창간 직후 독자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새로운 사업을 계획한 바 있다. 1923년 5월 25일 지령 1000호 기념사업은 그 대표적 사례다. 당시 동아일보는 1000호를 앞두고 ‘현금(現今) 정치의 엄정 비판’ 의견 모집과 민족 지도자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하는 ‘현대인물 투표’를 공고했다. 이런 사업은 모두 그 정치성을 문제 삼은 총독부의 강압으로 중단됐다.
그러나 상금을 내건 문예작품 공모만은 계획대로 진행했다. 이 공모 행사는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참여와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고, 문단의 신인 발굴에도 큰 몫을 했다.
심사 결과 각 부문에서 1등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단편소설 부문에서는 2, 3등 작품을 뽑았고, 신시 부문에서는 3등 두 편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김창술의 ‘봄’이었다. 김창술은 경향시를 발표하면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도 가담했던 인물이다. 동화극 부문에서는 가작 네 편 가운데 윤석중의 ‘올빼미의 눈’이 들어 있었다. 당시 14세였던 윤석중은 이후 ‘퐁당퐁당’ ‘고추 먹고 맴맴’ 등 동요의 창작과 보급에 일생을 바친 한국 아동문학의 선구자로서 ‘동요의 아버지’로 칭송되고 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작문 현상공모의 성격을 벗어났다. 전문적인 문필가를 선발하는 문단 등용 제도로 공식화됐다. 1930년대 입상자 가운데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이 많다. 1933년 시 부문에 가작 입선한 황순원은 시집 ‘골동품’ 등을 내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장편소설 ‘카인의 후예’ ‘인간접목’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 ‘움직이는 성’ ‘신들의 주사위’와 단편 ‘소나기’ 등을 통해 한국 소설의 거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1936년 신춘문예는 시 부문에서 서정주의 ‘벽’이, 단편소설 부문에서 김동리의 ‘산화(山火)’가 당선됐다. 서정주는 첫 시집 ‘화사집’ 이후 ‘귀촉도’ ‘신라초’ ‘동천’ 등을 발표하면서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 됐다. 김동리는 ‘무녀도’ ‘역마’ ‘까치소리’를 비롯해 장편소설 ‘을화’를 발표하면서 토속적 세계에 가장 관심을 기울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 해에는 허윤석이 김혜숙이라는 가명으로 제출한 시 ‘밀밭 없는 동리’도 당선작이 됐고, 정비석의 ‘졸곡제(卒哭祭)’가 가작 입선했다. 민요 부문에서는 김종한의 ‘망향곡’이 뽑혔다. 이들은 모두 문단의 독특한 개성파 작가로 자리 잡았다.
광복 이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과한 문인들로 한정동, 이원수를 비롯한 아동문학가가 있다. 시인 조명암과 함형수, 시조시인 이영도, 소설가 최인준 곽하신 등도 모두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다. 극작가 이서향과 이광래, 비평가 김성근과 윤고종도 있다.
광복 후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문인들도 면모가 다채롭다. 소설의 경우 정연희 천승세 홍성원 현기영 한수산 이문열 등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시인으로는 황명 신동문 권일송 정진규 이수익 이성부 이가림 송기원 이동순 정희성이 있으며, 이정록 박라연 기형도 안도현 남진우 등이 전통을 이었다. 시조 부문에서도 오랜 전통을 지키면서 광복 후 김기호 정소파 박경용 이우종 이근배 김동준 윤금초 등의 시인을 배출했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정채봉과 극작가 윤대성 이강백도 모두 동아일보 신춘문예 수상자다. 평론가 오생근 조남현 최원식 김종철 윤영천 정과리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쳤다.
1980년대에는 평론 부문의 영역을 확대해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영화 등으로 새롭게 넓혔다. 예술 분야별 비평의 전문성을 제고하면서 그 논리와 방법을 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 새로운 시도는 뜻밖의 성과를 낳았다. 김병종 유홍준 윤범모 임두빈 등을 미술평론가로 키웠고, 민경찬 이장직 주성혜 송혜진이 음악평론가로 등장했다. 최근 영화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심은진 강유정도 모두 영화평론을 통과했다.
1990년을 전후해 소설 분야에서 여성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김민숙 이혜경 함정임 전경린 은희경 조경란 윤성희 천운영 등을 잇달아 배출했다. 이들은 개성적인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글쓰기의 전범이 되는 문제작들을 쏟아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여성 작가들이 한국 문학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은 문단사적으로 주목되는 성과라고 하겠다.
동아일보는 신춘문예와 별개로 여러 차례 특별 현상공모를 통해 장편소설을 발굴한 바 있다. 한국 근대소설이 단편소설에 편중돼 있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신문사가 직접 장편소설의 중요성에 주목했던 것이다. 이 장편소설 특별 공모는 정기적으로 운영된 것은 아니지만 숱한 화제를 남기면서 문학사에 기록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1963년 장편소설 공모에는 이규희의 ‘속솔이뜸의 댕이’가 당선됐다. 근대화의 물결이 몰려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하는 농촌의 현실을 섬세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1964년에는 홍성원의 ‘디데이의 병촌(兵村)’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병영소설’ 또는 ‘군대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작품은 6·25전쟁 후 휴전선에 배치된 군부대를 배경으로 분단 현실의 최전방에 위치한 병영의 내부를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1981년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에는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이 당선됐다. 이 소설의 신문 연재가 끝난 후 동아일보는 2∼5부를 월간 ‘신동아’에 연재했고, 작가는 7년 넘게 작품의 완성에 매달렸다. 한국 사회가 봉건적 사회제도의 붕괴와 함께 근대적 변화를 겪는 과도기의 혼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작가는 허물어져가는 전통적인 민간 풍속의 섬세한 소설적 복원에 커다란 성과를 거뒀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박완서의 ‘나목’도 화제작이다. 이 소설은 6·25전쟁의 상처로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 가난과 처절하게 싸우는 예술가의 삶을 함께 그렸다. 여주인공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내면의 아픔을 극복해 가는 과정과 진정한 예술의 길을 찾아 떠나는 화가의 모습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동아일보는 지금도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상금을 내걸고 문학작품을 공모한다. 이 특이한 문단 등용 제도는 문학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늘 아득하다. 수많은 문인 지망생이 신춘문예를 기다리며 작품을 다듬고 투고한다. 그러고는 가슴을 졸이면서 새해 첫날 신문 발표를 기다린다. 아마도 문학의 길에 오르기 위한 ‘통과의례’를 이렇게 유별나게 치르는 나라는 세계에 달리 없을 듯하다.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