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은 2020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자
한낮에 카페에 오는 내게 뭘 하는 사람이냐 물은 적도 없다. 한번은 길었던 머리를 짧게 깎고 카페에 갔다. 내 머리를 본 주인의 얼굴에 잠깐 놀란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어제와 같은 표정으로 음료 주문을 받았다. 사계절 옷 두께를 달리하면서도 음료 취향만큼은 변하지 않던 나다. 그는 ‘오늘도 카페라테죠?’ 하고 친근하게 앞장서 내 선택을 확신할 수도 있었지만, 항상 내게 뭘 주문하겠느냐 물었다. 나는 매번 같은 대답을 했고, 그는 균일한 향미의 커피를 트레이에 가지런히 받쳐 내주었다. 언제나 트레이는 빼고 잔만 달랑 들고 가는 나인 줄 알면서도…. 오가며 나눴던 대화는 인사와 주문 관련한 대화, 그게 다다. 나름 긴 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냈으나 카페 주인은 커피를 내리는 데 충실했고, 나는 온전히 나에게 충실했다.
살아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들쑥날쑥 속을 헤치는 질문과 충고를 받곤 한다. 대부분 그런 질문은 유무(有無)에 관련된 편으로 답 역시 간단하고 명확하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나의 있고 없음을 덤덤히 말해왔다. 그 뒤엔 충고도 따르기 마련인데 들어보면 하나같이 다 틀린 말은 아니나 도움은 썩 되지 않아 대충 수긍하고 돌아섰다. 어쩐지 그럴 때마다 살갗이 쓸리는 느낌이다.
무심히 제가 하는 일에만 충실한 이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카페 주인이 내겐 그랬다. 틀과 시선 없이 머물며 보낸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를 지어가는 데 잠잠히 몫을 했다. 어떤 이가 그의 뜻대로 지어질 수 있게끔 한 발짝 떨어져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그 거리감이 때론 누군가를 단단하고 고유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실, 이제 더는 그 카페에 자주 오가지 못한다. 내가 먼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끔 들러도 카페 주인은 늘 그랬듯 다정한 거리를 두고 날 맞이해줄 것을.
이다은 2020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