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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마음 첫 발자국]다정한 거리 두기

입력 | 2020-04-14 03:00:00


이다은 2020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자

6년 동안 자주 오가던 단골 카페가 있었다. 단골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집과 가까웠고 커피 맛이 좋았으며 거의 매일 오는 나에게 무심한 카페 주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 주인은 한 번도 내게 또 오셨느냐 반갑게 인사한 적이 없다. 그저 나를 아는 눈빛으로 ‘어서 오세요’ 나지막이 인사할 뿐이었다.

한낮에 카페에 오는 내게 뭘 하는 사람이냐 물은 적도 없다. 한번은 길었던 머리를 짧게 깎고 카페에 갔다. 내 머리를 본 주인의 얼굴에 잠깐 놀란 기색이 스쳤으나 이내 어제와 같은 표정으로 음료 주문을 받았다. 사계절 옷 두께를 달리하면서도 음료 취향만큼은 변하지 않던 나다. 그는 ‘오늘도 카페라테죠?’ 하고 친근하게 앞장서 내 선택을 확신할 수도 있었지만, 항상 내게 뭘 주문하겠느냐 물었다. 나는 매번 같은 대답을 했고, 그는 균일한 향미의 커피를 트레이에 가지런히 받쳐 내주었다. 언제나 트레이는 빼고 잔만 달랑 들고 가는 나인 줄 알면서도…. 오가며 나눴던 대화는 인사와 주문 관련한 대화, 그게 다다. 나름 긴 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냈으나 카페 주인은 커피를 내리는 데 충실했고, 나는 온전히 나에게 충실했다.

살아가면서 아무렇지 않게 들쑥날쑥 속을 헤치는 질문과 충고를 받곤 한다. 대부분 그런 질문은 유무(有無)에 관련된 편으로 답 역시 간단하고 명확하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나의 있고 없음을 덤덤히 말해왔다. 그 뒤엔 충고도 따르기 마련인데 들어보면 하나같이 다 틀린 말은 아니나 도움은 썩 되지 않아 대충 수긍하고 돌아섰다. 어쩐지 그럴 때마다 살갗이 쓸리는 느낌이다.

만만찮고 거친 세상이라는 건 나 또한 이미 살아가는 중이라 자연히 안다. 작은 상처에 연연하며 아픔을 곱씹는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다. 어떤 상처는 나를 증명하기도 하지만 어떤 상처는 나를 굳어지게 한다. 나는 그저 쉽게 가늠하고 재단하는 질문과 충고를 받아 가며 쓸리고 아물고를 반복하다 무감해져버린 살성(性)으로 누군가를 마주 보며 ‘당신을 이해하고 있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는 살아가고 싶지 않다.

무심히 제가 하는 일에만 충실한 이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카페 주인이 내겐 그랬다. 틀과 시선 없이 머물며 보낸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를 지어가는 데 잠잠히 몫을 했다. 어떤 이가 그의 뜻대로 지어질 수 있게끔 한 발짝 떨어져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그 거리감이 때론 누군가를 단단하고 고유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사실, 이제 더는 그 카페에 자주 오가지 못한다. 내가 먼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가끔 들러도 카페 주인은 늘 그랬듯 다정한 거리를 두고 날 맞이해줄 것을.
 
이다은 2020 신춘문예 시나리오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