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1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IT전당포’ 관계자는 기자가 아이폰X 스마트폰을 담보로 얼마나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아이폰의 중고 시세를 검색한 뒤 제품의 상태와 성능 점검을 마친 그는 산정된 대출금액과 함께 법정 최고이자율인 24%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자가 3개월 연체되면 담보물건을 알아서 처분한다. 아예 현금으로 팔고 싶다면 최대 25만 원까지 쳐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담을 받는 도중 20, 30대로 보이는 고객 2명이 들어왔다. 그는 상담 도중에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 자신이 사용하던 노트북이나 태블릿PC, 스마트폰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 위한 문의였다. 대학생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최근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곳이 없다. 카드빚을 갚아야 해 태블릿PC를 맡기고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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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에서 중고명품을 취급하는 전당포 업주는 “코로나19 이후 명품을 구매하기보다 판매하려는 고객이 20~30% 가량 늘어난 상황”이라며 “롤렉스 등 고가의 시계를 처분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금 시세가 오르자 돌반지나 목걸이, 금수저 등을 판매하거나 예물로 받은 다이아 반지를 들고 찾아오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실직이나 휴직 등으로 소득이 끊기면서 온라인 중고거래를 통해 생활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무급휴직 중인 회사원 B 씨는 당장 안 입게 된 신발과 의류 등을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판매하다가 최근부터는 ‘중고물품 되팔기’로 용돈을 벌고 있다. 앱을 통해 상태 좋은 의류나 전자기기 등을 저렴하게 구입한 뒤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높은 가격에 매매하며 차익을 내는 것이다. B 씨는 “수입이 줄어서 용돈 벌이를 위해 중고 매매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할인율이 높은 지역화폐를 구매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최대 20%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판매됐던 ‘서울사랑상품권’은 약 2주 만에 1300억 원 물량이 전부 소진됐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입소문을 타고 시작된 구매 행렬이 서울 전역으로 번진 것이다. 상품권 소비도 일평균 1억 원에 불과했지만 이달 7일에는 하루 80억 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소득절벽’에 직면한 가계가 늘어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현재 상황이 악화될 경우 내수 침체나 금융 부실 등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가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으로 이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외환위기 때에도 한계 가계를 중심으로 빚어진 현상”이라며 “코로나 침체기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경우 금융기관 등으로 문제가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