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협력 통한 신속한 코로나 검사
코로나19 유전자 검사하는 씨젠의료재단 의료진 10일 서울 성동구 씨젠의료재단의 분자진단검사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유전자 검사 상황을 보고 있다. 컴퓨터 아래 칸에 놓인 기기가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검사 장비로 시약을 섞은 유전자를 넣은 뒤 2, 3시간 지나면 컴퓨터 화면에 결과가 나온다. 이 기관의 핵심 진단기기가 설치된 검사실이 언론에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구자룡 논설위원
‘아! 이래서 대규모 검사가 가능했구나.’
10일 오전 찾아간 서울 성동구 천호대로 씨젠의료재단 2층 분자진단검사실. 유전자 검사 장비인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RT-PCR)’ 검사기 55대가 컴퓨터와 짝을 이뤄 빼곡히 놓여 있었다.
씨젠은 전국 4000여 개 병·의원에서 하루 평균 환자 2만 명의 검체 18만 건을 의뢰받아 24시간 검사하는 검사 전문기관이다. 대규모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이 발등의 불이 되자 진단의 전 과정을 자동화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진단 시약의 ‘타깃 유전자’를 한 튜브에 3개씩 넣는 첨단 기술을 개발해 기존 검사 대비 효율을 수십 배로 높였다.
경기 용인의 SCL서울의과학연구소는 핀란드로부터 1만8000개의 검체 조사를 의뢰받아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핀란드는 인근 에스토니아 등에도 검체를 보냈지만 한국을 선택했다. 검체를 담은 박스 몇 개를 실은 항공기가 10시간 이상 걸려 한국으로 날아와 검사를 맡기고 있다. ‘K방역’ 코로나 검사의 실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내에는 씨젠의료재단 SCL서울의과학연구소 이원의료재단 녹십자 삼광 등 ‘빅5 검사 전문기관’이 있다. 이들을 포함해 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100여 곳의 의료기관이 코로나 RT-PCR 검사를 하고 있다. 전수 검사해야 할 대구의 신천지 신도가 1만 명이 넘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은 데는 이런 막강한 검사 역량이 있었다.
코로나 검사는 시약이 있어야 가능하다. 중국에서 지난해 12월 31일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올해 1월 12일 미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가 유전자 염기서열을 공개하자 국내 바이오 업체들은 시약 개발에 착수했다. 국내에서 1월 20일 첫 환자가 나오기 전 이미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는 주기적으로 ‘분자진단검사실’ 인증을 통해 유전자 검사 진단 기관을 관리해 왔다. 전국의 2000여 검사 기관 중 유전자 진단 인증을 받은 곳은 100여 곳에 불과하다. 3월 7일 처음 RT-PCR 검사를 시작할 때 47곳이 1차로 검사 기관으로 선정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코로나 검체 샘플 7개(양성 4개, 음성 3개)를 보내 맞힌 곳 등을 뽑았다. 스포츠에서 저변이 넓어야 훌륭한 선수가 나오듯 높은 수준의 진단 의학 인프라가 코로나 진단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진단검사의학회는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 당일 ‘코로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이틀 후에는 질본 관계자들과 만나 진단 시약 제조 방법 찾기에 나섰다. 당시까지 알려진 시약 제조법은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안 등 6, 7가지가 있었지만 각각의 장단점이 있었다. 질본과 민간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에 적합한 검사 프로토콜을 만들었다. 질본은 29일 한국형 시약 검사법인 ‘RT-PCR 프로토콜’을 업체에 공개했다. 한 전문가는 이를 두고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고 각 업체가 각자 최고의 메뉴를 요리하도록 했다고 비유했다.
민간 바이오 업체나 검사 기관의 역량이 있어도 ‘행정과 규제’의 병목에 걸려 타이밍을 놓치면 무용지물이다. 다행히 2016년 겪은 ‘메르스 트라우마’가 코로나 사태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메르스 이듬해에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새 진단 시약과 검사법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하는 제도가 도입됐는데 이번에 제때에 발동된 것이다. ‘1월 27일 서울역 회의’가 이번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전환점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한국은 누적 확진자가 4명으로 코로나 불길이 본격화하기 직전이었다. 코로나 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된 날이기도 했다. 오후 3시 서울역 역사 4층 ‘별실’ 회의실에 질본이 소집한 30여 명이 모였다. 하루 전날 긴급히 통보해 소집된 회의다. 질본과 진단검사의학회, 시약 생산업체 20여 곳의 관계자들이 서울과 지방에서 모였다.
질병관리본부가 1월 27일 긴급회의에서 코로나19 진단시약 긴급 승인 방침을 전달한 서울역 ‘별실’ 회의실.
시약 업체 4곳이 신청서와 시약을 제출했다. 질본은 밤새워 서류를 심사하고 시제품은 질본과 3개 의료기관에서 교차해 성능 검사를 벌였다. ‘긴급승인’이지만 강도 높은 심사가 진행돼 2월 4일 코젠바이오텍 한 곳의 시약만이 승인을 받았다.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던 심사가 초스피드로 진행됐다.
2월 7일 코젠의 시약으로 RT-PCR 검사가 시작됐다. 기존 ‘판 코로나’ 검사는 검체를 18개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보내 1차 검사를 한 뒤 질본에서 2차 검사를 했다. 24시간 이상 걸리고 하루 처리 용량도 160여 명분에 불과했다. 이제 6시간 이내로 수천 건의 검사가 가능해졌다. 12일 씨젠에 이어 솔젠트 에스디바이오센서 바이오세움 등 5개 업체의 시약이 3월 초까지 잇달아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국내 진단 시약은 20만 건 이상의 검사를 할 수 있는 물량이 확보됐다.
국내 첫 확진자의 주치의인 인천의료원 김진용 감염내과 과장은 ‘드라이브스루’ 검사의 첫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생물테러가 발생하면 방역 요원이 감염되지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예방용 항생제를 배분하기 위해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나눠주는 방식을 코로나 검사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감염학회 사이트에 올렸다. 이 내용을 본 경북 칠곡경북대병원의 손진호 원장이 2월 23일 ‘컨테이너 검사’에 도입했다. 사흘 후 경기 고양시는 덕양구 공영주차장에서 지금은 세계에 널리 알려진 ‘드라이브스루’ 검사를 시작했다. 그 후 검사받는 사람이 ‘전화박스’에 들어가 의료진이 전신을 감싸는 레벨D 방호복을 입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나온 데 이어 검사자가 전화박스에 들어가고 피검사자는 바람이 통하는 밖에서 검사를 받는 ‘워크스루’로 진화했다.
한국은 ‘창문 열고 모기 잡는다’는 족보에도 없는 대응 전략으로 대가도 치렀고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발 빠른 진단 시약 개발과 긴급 승인에서 나타난 기민한 대응과 민관 협력이 코로나 창궐의 고삐를 잡게 했다. 이 과정을 보면서 시약 업체나 검사 기관은 영리를 추구하지만 정부가 통제하기보다 도와주고 인센티브를 제공할 때 어떤 창의와 열정이 발휘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는 없을까. 지금도 원격 의료나 유전자 치료 등 의료와 바이오 분야에서는 촘촘한 규제로 경쟁력이 옥죔을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한다면 코로나 사태가 주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 치료약과 백신 개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한번 코로나 검사에서와 같은 민관의 협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해본다.
▽도움말 주신 분 △서울대 의대 송상훈(대한진단검사의학회 총무이사) 성문우 교수(〃 코로나TF 위원) △연세대 의대 이혁민 교수(〃 코로나TF 팀장) △씨젠의료재단 천종기 이사장, 이봉우 행정원장, 성낙문 임상의학연구소 연구소장, 이선화 의료원장, 김덕환 기획본부장 △코젠바이오텍 김수복 상무 △SCL서울의과학연구소 임환섭 대표 원장 △익명 요구한 질병관리본부 고위 관계자 △우영택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김용석 서울역 대외협력팀장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