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뭉친 사브르 투톱 김정환-구본길
펜싱 사브르 국가대표 김정환(오른쪽)과 구본길은 12년 동안 대표팀과 소속팀(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동고동락했다. 둘은 요즘 경기 하남시에 있는 소속팀 체육관에서 연기된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은퇴했다가 복귀한 김정환은 “훈련을 제대로 못해 근력과 유연성이 많이 떨어졌다. 웨이트트레이닝 위주로 몸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둘은 2011년 서울 아시아선수권, 2012년 런던 올림픽,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2017년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브르 단체전 정상에 오르며 그랜드슬램(주요 4개 대회 우승)의 감격을 함께 누렸다.
지금의 한국은 남자 펜싱 사브르에서 개인과 단체 모두 세계랭킹 1위인 사브르 강국이지만 런던 올림픽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사브르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적이 없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한국 펜싱은 남녀 플뢰레와 남자 에페에서 개인전 메달이 3개 나왔을 뿐이었다. 김정환은 “사브르는 심판 판정의 비중이 커서 종주국인 유럽 국가들이 오랫동안 강세를 유지했던 종목이다. (구)본길이와 나는 한국 사브르가 어려웠던 시절부터 세계 1위가 되기까지 줄곧 함께해 온 셈”이라고 말했다.
구본길(오른쪽)과 김정환이 2014 인천 아시아경기 펜싱 사브르 남자 개인전에서 각각 금메달, 은메달을 딴 뒤 메달을 깨물고 있다. 동아일보DB
지금은 서로 조언을 구하는 사이다. 김정환은 6년 후배인 구본길에게 주저 없이 펜싱 기술과 전략에 대해 묻곤 한다. 스스로를 ‘늦게 핀 선수’라고 말하는 김정환은 타고난 재능이 뛰어난 구본길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김정환은 “당시만 해도 선배가 후배에게 다가가는 게 창피하다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자존심을 지키느라 실력이 떨어지는 게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본길이가 고맙게도 자기가 가진 걸 전부 알려주더라. 그때 본길이가 솔직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가 약 1년 만에 돌아온 ‘맏형’ 김정환이 도쿄 올림픽을 향한 각오를 다지면서 이들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됐지만 둘은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형이 꼭 필요하니 올림픽까지만 함께하자”며 김정환의 대표팀 복귀를 가장 열심히 응원했던 구본길은 “형이 돌아와줘서 큰 힘이 된다. 메달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환은 “깔끔하게 올해 7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멋지게 은퇴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했는데 1년 연기돼서 아쉽긴 하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상황이다. 본길이와 함께 마지막 무대를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