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고성군수 재선거 결과를 보도한 TV 뉴스. MBC 화면 캡처
선거 때만 되면 ‘딱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겠다’면서 2008년 강원 고성군수 재선거 결과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돌아다니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신 것처럼 당시 선거에서는 무소속 황종국 후보가 딱 한 표 차이로 역시 무소속이던 윤승근 후보를 꺾고 고성군수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아주 냉정하게 말하면 이 그림이 딱 한 표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건 아닙니다.
공직선거법 제191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일 때는 연장자를 당선인으로 결정한다고 규정하기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당시 황 후보는 71세, 윤 후보는 53세였습니다.
고성군은 현재도 군수가 없는 상태로 15일 총선과 함께 재선거를 실시합니다.
아돌프 히틀러. 동아일보DB
선거 때가 되면 저 그림 말고도 투표를 독려하는 여러 스토리가 SNS에 돌아다닙니다.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한 표 차이로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 당권을 잡았다는 것도 이런 사례 중 하나입니다.
당시 독일 국민이 민주적인 투표로 히틀러에게 권력을 쥐어줬다는 말도 절반만 맞습니다.
처음에 독일 국민이 선택한 건 히틀러가 아니라 나치였습니다.
히틀러는 1932년 3월 독일 대통령 선거에 나갔다가 파울 본 힌덴부르크(1847~1934) 후보에게 패했습니다. 대신 같은 해 7월 총선거에서 나치가 230석을 얻으면서 히틀러는 제1 당 당수가 됐습니다.
의회 해산 후 실시한 같은 해 11월 총선 때 나치당 의석 숫자는 196석으로 줄었지만 제1 당 자리를 지켰습니다.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1933년 1월 히틀러를 총리(Chancellor)로 임명했습니다.
나치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숨지기 바로 전날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경우 총리가 대통령은 이어 받는다는 내용으로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히틀러가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게 되면서 그는 ‘총통(퓌러·F¤hrer)’이라는 직함을 얻었습니다. 독일 역사상 총통은 히틀러 한 명뿐입니다.
에드워드 에버렛 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위키피디아 공용
선거 운동을 하느라 바빠서 본인이 투표를 못하는 바람에 한 표 차이로 졌다는 에드워드 에버렛 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1794~1865) 이야기도 절반만 진실입니다
이 케이스는 사정이 좀 복잡합니다.
문제가 된 1839년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가 미국 역사상 가장 접전으로 손꼽히는 건 사실입니다.
단, 당시 휘그당 후보로 나선 에버렛 전 주지사는 5만725표를 얻었는데 민주당 소속 당선인 마커스 모튼(1784~1864)은 이보다 309표 더 많은 5만1034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 건 당시 매사추세츠주 선거 제도 때문입니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되려면 반드시 과반(majority) 득표에 성공해야 했습니다.
당시 모튼 후보는 정확히 50.001%를 얻었습니다. 만약 한 명만 모튼 대신 에버렛 후보를 선택했어도 득표율 50%에서 멈추는 상황. 이러면 50% 초과가 아니기 때문에 모튼은 당선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는 주 의회에서 도지사를 결정하도록 돼 있었습니다. 당시 매사추세스추 입법부는 휘그당이 장악한 상태.
그래서 휘그당에서는 어떻게든 선거 결과를 주 의회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에버렛 후보는 ‘쿨하게’ 패배를 인정했습니다.
딱 한 표가 미국 대통령을 결정하게 되는 내용을 다룬 영화 ‘스윙 보트’ 포스터.
마찬가지로 영국 왕 찰스 1세는 한 표 차이로 처형당한 게 아니고, 멕시코에서 독립한 텍사스 공화국을 미국이 병합하기로 한 것도 한 표 차이가 아니라 두 표 차이(27표 대 25표) 였습니다.
왕정당 의원 한 명이 배앓이로 투표에 불참하는 바람에 프랑스에 제3 공화국이 들어섰다는 것도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암사자는 자기가 낳은 모든 새끼를 키우면 안 되는 법. 절벽에서 떨어뜨린 뒤 기어 올라오는 녀석만 키워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만이 사자를 우리 머릿속 사자로 만드니까요. (실제로는 당연히 다 키웁니다.)
미국 연방 선거에서 한 표가 투표 향방 전체를 바꿀 확률은 (미국 로또) ‘파워볼’ 당첨 확률보다 낮습니다.
그렇다고 한 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한 표, 한 표가 쌓여 결국 민심이 되는 거니까요.
그러니 아직 투표를 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당장 투표소로 향하셔야 합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