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김정은(오른쪽)이 오수용 노동당 경제담당 부위원장(가운데)과 대화를 하는동안김평해노동당 부위원장 겸간부부장이받아적고있다. 조선중앙방송화면 캡처
주성하 기자
북한의 실질적 권력 서열은 정점의 김정은과 그 아래 ‘스리 우먼(이설주, 김여정, 현송월)’으로 시작된다. 이 4명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神)계의 왕족이라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인간계 권력 서열 1위는 누구일까.
북한에서 권력자를 찾으려면 인사권을 누가 쥐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김평해는 노동당 내각 보위성 보안성 중앙재판소 검찰소 무력성 총참모부 총정치국의 책임일꾼, 즉 중앙당 정치국에서 비준하는 간부 사업을 하는 책임자다. 가장 높은 레벨의 간부 임명을 맡고 있다. 김평해 밑의 부부장, 과장들이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중앙당 비서국 비준 대상 간부 임명을 담당한다.
김평해는 모든 고위급 간부들의 해임, 임명, 조동 등을 김정은에게 건의하고 또 지시를 받는다. 김평해는 당정군의 모든 고위간부들의 재임 기간, 미배치 간부 등을 꿰고 있다가 김정은의 히스테리적인 인사 조치에 맞게 적합한 인물을 선발하여 건의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자랑했다.
중앙당에서 오래 일한 사람을 지방에 파견하거나 또는 그 반대의 순환 경력을 갖게 한다거나 또는 보안, 보위, 군의 당 사업 경력이 없는 간부들이 해당 경력을 갖추게 할 시점을 정한다거나 하는 등의 ‘경력과정안’도 그가 정한다. 간부 스펙 관리까지 하는 셈이다.
이런 인간계 권력 1위인 김평해가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전격 해임됐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김평해 일당’ 숙청 작업이 시작됐다. 김정은 시대에 장성택 전 노동당 행정부장의 처형에 이어 두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대숙청이 시작된 것이다.
김평해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 동안 평안북도 도당 조직비서, 책임비서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도당 책임비서는 노동당 비서와 동급의 고위직이다. 도당 책임비서가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평안북도다. 도 소재지인 신의주에 북한의 각 중앙기관 산하의 무역회사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큰 명절 때마다 최소 수십만 달러를 뇌물로 받을 수 있다.
특히 김평해가 평안북도를 쥐고 있던 시기엔 폐철, 폐알루미늄, 구리, 철광석, 산림자원 등이 중국에 대거 팔려 나갈 때였다. 북한 무역일꾼들은 1995∼2005년을 외화벌이 황금기로 평가한다. 이런 시기에 ‘황금의 자리’에서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지만 김평해는 20년을 장기 집권했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처세술이 비상한지 알 수 있다.
당연히 김평해는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에게서 충신 중의 충신이란 조용한 감사 인사까지 받은 것을 보면 혼자 먹지 않고 많은 액수를 상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책임비서로 있을 때 둘째 아들은 신의주 시당 간부부장을 지냈는데, 사생활이 부화방탕하고 마약을 복용하는 등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부친이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워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그도 결국 숙청이란 뻔한 말로를 피해갈 수 없었다. 김평해가 지난해 말 숙청되고, 올 2월에는 그가 키웠던 김능오 평양시당 위원장, 이학송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장 등 심복들이 모두 출당·철직됐다. 이학송은 김평해가 도당 위원장을 하던 시기 신의주 시당 위원장으로 있었던 사람이다. 평북 도당 위원장 자리가 황금계란이라면 신의주 시당 위원장은 황금계란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다.
김평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북한 권력의 가장 큰 세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북한 간부들은 이를 보고 김정은 턱밑에선 누구도 온전히 살아남기 힘들다는 현실을 새삼 느끼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