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6주기… 바다 뛰어든 민간잠수사들 그날 이후

세월호 6주년을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을 찾은 추모객들이 인양된 세월호 선체를 숙연하게 바라봤다. 목포=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의 가슴에 피멍이 들었던 날. 하지만 여전히 ‘그날’이 현재진행형인 이들이 있다. 유가족, 생존자…. 그리고 그 바다에 뛰어든 잠수사들이다.
그날 참사가 벌어진 뒤 현장에서 활동한 ‘민간잠수사’는 모두 25명. 황 잠수사처럼 특정 업체와 계약을 맺지 않고 자발적으로 모였던 이들을 일컫는다. 그중 이광욱 잠수사(당시 53세)는 수색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김관홍 잠수사(당시 43세)도 2016년 세상을 떠나 23명이 남았다.
10명 가운데 무려 8명은 참사 뒤 골괴사증(骨壞死症)을 앓고 있었다. 골괴사증이란 혈액순환에 장애가 생겨 뼈 조직이 죽어가는 질환. 대표적인 잠수병 가운데 하나다. 세월호 잠수사들은 “당시 수색 작업은 평소보다 몇 배로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에 참여했던 민간 잠수사들이 11일 6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동료 관홍이(고 김관홍 잠수사)가 하늘로 떠났을 때, 따라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김상우 잠수사, “평범한 가장이었던 내가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실업자, 환자가 됐다. 삶이 너무 피폐하다.” 황병주 잠수사, “통곡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한 명이라도 더 수습해야겠다는 책임감이 강해지더라” 조준 잠수사. 용인=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신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10명 모두 지금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황 잠수사는 “당시 상황은 물속에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떠올렸다. 7명은 흔히 트라우마라 부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5명)과 불면증(7명) 진단을 받은 잠수사도 상당했다.
이렇다 보니 술에 기대는 일도 늘었다. 10명 가운데 8명이 참사 뒤에 음주 횟수가 늘었다고 했다. 김상우 잠수사(47)는 “관홍이가 떠난 뒤 따라 죽고 싶단 생각마저 들었다. 술을 마셔도 미칠 것 같았지만 자꾸 찾게 된다”고 했다. 반면 수면 시간과 식사량은 줄어들었다. 한 잠수사는 “초기 ‘다이빙벨’ 도입 같은 무리한 주장을 폈던 일부 잠수사 탓에 함께 욕을 먹으며 잠수사로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날로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뛰어가겠다고. “모든 게 악조건이었죠. 하지만 매일 통곡하는 부모들을 마주하면 없던 사명감도 생겼어요. 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조준 잠수사) “만약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도 있죠. 아마 평생 후회하면서 살았을 겁니다.”(김상우 잠수사)
용인=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