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桃花吹落杳難尋, 人爲來遲惜不禁. 我道此來遲更好, 想花心比見花深.)
중국 고전시의 미덕은 온유돈후(溫柔敦厚)에 있었다. 그것은 따스하고 도타운 진심을 바탕으로 선(善)을 이끌어내는 게 본분이었고 공자 이래의 오랜 전통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괴이하거나 교만하거나 음란하거나 심지어 익살스러운 경향마저도 멀리하려 했다. 원매는 달랐다. 그는 자유인을 자처하면서 복고풍이나 형식 지상주의를 경계했고 진솔한 내면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시심(詩心)은 따라서 무한정 열린 시각을 지향했다.
시기를 놓쳐버린 상춘 나들이, 텅 빈 꽃자리를 마주하면 아쉽고 애달픈 게 인지상정이다. 꽃 지고 열매 맺는 자연의 섭리가 괜히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이형기 ‘낙화’)를 흥얼대며 흔연히 돌아서기가 그리 쉬운가. 하지만 시인은 마음속에 갈무리하는 것으로 이미 꽃을 충분히 즐기고 있다. 화려한 외양보다는 그 이면에 자리한 싹틈과 몽우리와 개화와 낙화까지의 과정 하나하나가 다 기대와 설렘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절절함이 있었기에 꽃자리를 보아도 허허롭지 않다. 상상이 때로 온전히 드러난 현상 그 이상의 풍요와 여운을 주기도 하는 게 세상 이치다. 열정적인 사랑 못지않게 첫사랑 혹은 짝사랑이 더 간절하고 애틋할 수 있듯이.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