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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리쇼어링[횡설수설/박중현]

입력 | 2020-04-21 03:00:00


“코로나19 위기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공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다.”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은 며칠 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간 마스크를 확보하느라 뛰어다니며 느낀 소회였다. 이어 “우리나라에 공장이 100여 개 있어서 마스크도 이 정도로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국가적 위기 때 제조업 기반이 국내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절감한 나라는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이달 초 포드, GM 등 자동차기업에 인공호흡기 생산을 강제하려고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설계·개발 기술이 넘쳐나도 정작 제품을 생산할 공장이 미국 땅 안에 없었던 것이다. 먼저 위기를 넘어선 중국 인공호흡기 업체들은 각국에서 쏟아지는 주문에 24시간 공장을 돌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리쇼어링(reshoring)’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됐다. 낮은 비용, 넓은 시장을 쫓아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의 반대말로 떠났던 기업이 모국에 복귀하는 게 리쇼어링이다. 한국에선 ‘기업유턴’이란 말을 같은 뜻으로 써 왔다. 트럼프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낮췄고, 일본 아베 정부도 법인세 실효세율 인하와 입지규제 완화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생산시설을 해외로 내보낸 선진국들은 제조설비를 특정국에 몰아둘 때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주식시장 금언이 국제 산업 체계에서도 작동하는 셈이다. 세계의 공장 중국발 팬데믹은 20년 이상 지탱해온 ‘글로벌 공급망’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8일 “‘안전한 한국’을 부각해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하겠다”고 말했다. 리쇼어링 경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경쟁국들이 만만찮다. 미국은 리쇼어링을 ‘안보사안’으로 인식해 밀어붙일 태세다. 베트남 등 동남아 신흥국들도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반면 한국은 선진국들이 인하경쟁을 벌일 때 드물게 법인세 최고세율을 25%까지 높인 나라다. 3년간 32.8% 올린 최저임금 탓에 인건비 경쟁력도 낮다.

▷“나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일자리 자석(employment magnet)’이 되길 원한다. 기업들이 떠나는 걸 훨씬 어렵게 만들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직후 말했듯 리쇼어링의 본질은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 확보’다. 한국이 이번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을까. 기업은 정부의 의지가 아니라 숫자로 드러나는 혜택에 반응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