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하는 가운데 박격포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미국의 군사 원조와 휴전 중재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스라엘은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상당한 영토를 양보하는 한편으로 1∼3차 중동전쟁의 ‘무패신화’에도 금이 갔다. 이후 이스라엘 국방부는 10명 중 9명이 동의해도 1명은 반드시 반대해야 하는 ‘10번째 남자’ 제도를 도입했다. 욤키푸르 전쟁을 안보 이완의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차후 대비에 한 치의 방심이 없도록 한 것이다.
한국과 안보 상황이 유사한 이스라엘의 교훈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정부와 군도 무뎌진 대비태세를 방치했다가 북한에 허를 찔린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10년 전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도 다를 게 없다. 당시 군은 서해의 얕은 수심에서는 북한의 잠수함 운용이 불가능하다고 예단하면서 수상함 대결에선 우리가 압도적 우위라는 자만심에 취해 있었다. 북한은 이를 정확히 간파해 소형 잠수정에서 어뢰를 쏴 천안함을 피격해 우리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이듬해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에서 정부는 사건 당일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과 예비모선들이 기지 출항 후 사라진 사실을 알고도 경계태세를 강화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천안함 피격의 주원인이 대북 안보 이완임을 자인하는 취지로 평가됐다.
최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정부와 군의 태도에서 대북 안보이완의 ‘데자뷔(기시감)’가 느껴지는 건 필자뿐일까. 북한이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대남 타격 신종 무기와 순항미사일 등을 연신 쏴 올려도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지 않은 채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군도 의례적인 유감 표명만 하고 넘어가는 게 일상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 대비태세가 눈에 띄게 무뎌지는 징후도 감지된다. 제주해군기지를 비롯한 군부대 곳곳이 민간인에게 뚫리는가 하면 비상대기 중이던 공군 조종사들이 음주를 하다 적발되는 등 기강 해이가 도를 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해군기지에선 새로 교체한 경계용 폐쇄회로(CC)TV의 오작동 상태를 알고도 수개월간 방치했고 술판을 벌인 조종사들은 지난해 한 차례도 비상출격을 하지 않았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설마 적이 도발해 올까’ 하는 방심과 태만이 일선 부대까지 스멀스멀 스며든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법하다.
안보의 가장 큰 독(毒)은 위기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군은 어정쩡한 평화에 도취되기보다는 현실을 냉철히 진단하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김정은이 연초에 경고한 ‘충격적 실제행동’이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대북 안보이완의 후과를 반복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악순환이 또다시 재연되지 않길 바란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