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
그 옛날 안주 하나에 몇 시간이고 머물던 학교 근처 소위 ‘개골목’의 술집을 찾았다. 익숙한 낡은 간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내려가자 반가운 얼굴들이 눈 한가득 들어왔다. “선배! 오랜만이에요!” “어머, 너도 왔구나!” 좋아하는 사람 옆에 좋아하는 사람. 한 명씩 보기도 어려운 얼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니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었다.
주인아주머니, 아저씨께서도 반겨 주셨다. 몇몇은 이름마저도 기억해 주셨다. “세상에, 이게 누구야!” “이제 딸이 하나 있어요!” 개강이 늦춰져 힘들다고 하셨다. 10년이 넘는 세월, 메뉴는 물론이고 가격조차 그대로인 넉넉한 공간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테이블뿐이었다. 그 옆의 즐겨 찾던 다른 술집 하나는 코로나 국면 속에 끝끝내 문을 닫았다. 옆집 사장님 이야기를 하시던 주인아주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여기는 진짜 닫으면 안 된다고,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연신 부탁드리고 뒤돌아 나오는 길, ‘IMF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라는 이 시기, 참 많은 이들의 소중한 공간들이 스러져 갔겠구나 새삼 깨달았다.
“다들 오랜만이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술자리에 모여 함께 웃고 울며 때론 엉뚱한 얘기들로 다투기도 하고 밤새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네.…(중략)… 마지막 순간에 오늘이, 웃으며 서로가 기억되기를(몽니 ‘술자리’ 중).” 노랫말을 따라 부르며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참 귀하고, 예뻤다. 굵직굵직한 이슈들에 치여 보고 싶은 마음조차 잊고 살았지만 사실 우리, 생각보다 서로가 고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외롭고 치열했던 때때로 두려웠던 두어 달을 돌아다보며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는 온기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익숙함에 소중한 줄 몰랐던 보통의 나날, 관계들이, 사실은 가장 깨어지기 쉽고 귀한 가치라는 것.
물론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일상의 일부나마 되찾은 지금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하다. 경계는 늦추지 않되 조금씩 기존의 삶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할 때, 추억의 장소들이, 관계들이 안녕한지 조심스레 안부를 묻는다. 완전한 일상을 되찾을 때까지 부디, 조금만 더 버텨 달라.
김지영 한화생명 라이프플러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