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출신 압바르 씨
지난달 양양 화재때 10여명 구해… 손-얼굴 등에 2, 3도 화상 입어
불법체류 자진 신고로 내달 출국
주민들, 복지부에 의상자 신청 나서 “숭고한 희생… 재입국 기회 줘야”

압바르 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11시 22분경 자신이 거주하는 강원 양양군 양양읍의 3층 원룸 건물에 들어가다 불이 난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불이야”를 외쳤고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불이 난 2층 원룸의 여성이 대피하지 못한 사실을 알고는 옥상에서 도시가스관과 TV유선줄을 잡고 내려가 창문을 통해 방으로 뛰어들었다. 불길에서 그는 여성을 구해냈지만 안타깝게도 이 여성은 이송 도중 숨졌다. 압바르 씨는 이 여성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목과 손, 귀 등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그사이 거세게 불어난 불길은 출동한 119 대원들에 의해 잡혔다. 압바르 씨의 발 빠른 행동이 없었다면 더 많은 주민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압바르 씨는 주민들을 구한 뒤 불법체류자 신분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현장을 피해야 했다.
압바르 씨의 화상 상태를 감안할 때 치료가 더 필요하지만 그는 다음 달 1일 출국해야 한다.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신분을 숨길 수 없었고, 신분이 드러나면서 주위에서 자진 신고를 권했기 때문이다.
장 교감과 주민들은 압바르 씨를 위해 왕복 항공권을 구입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법무부가 6월까지 자진 출국하는 외국인에게 재입국 기회를 준다고 밝혔지만 압바르 씨가 카자흐스탄에서 다시 한국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 교감은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지만 숭고한 희생정신을 고려해 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국행 비자를 받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양군은 압바르 씨의 구조행위 입증 서류 등을 갖춰 보건복지부에 의상자 신청을 할 예정이다. 압바르 씨는 2017년 12월 관광비자로 입국해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번 돈을 가족들에게 보내는 억척스러운 생활을 해 왔다.
현재 장 교감의 지인 거처에 머물고 있는 압바르 씨는 “화재 당시에는 앞뒤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게 돼 아쉽다”고 전했다.
양양=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