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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의 올림픽 물살, 후회 없이 독하게”

입력 | 2020-04-21 03:00:00

[기다림은 기회다]광주세계선수권 출전 32세 박나리




지난해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계영 800m에서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딴 박나리. 동아일보DB

“하루라도 운동을 게을리하면 나이가 나이인지라 컨디션이 확 떨어져요(웃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훈련시설 대부분이 문을 닫아 ‘운동선수’ 하기 힘든 시기다. 수영 박나리(32·전북체육회)도 마찬가지다. 매일 오전 웨이트트레이닝을 2시간 정도 한 뒤 오후에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문 연 수영장을 찾아 다시 2시간가량 물에서 훈련을 한다. 주말에는 등산도 한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평소 6시간 이상 훈련하던 시절에 비하면 부족하단다.

박나리의 ‘훈련 중독’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고교 1년이던 2004년 당시 아테네 올림픽 개인혼영 200m에 출전하며 ‘제2의 최윤희’로도 불린 박나리는 곧바로 잊혀졌다. 부상 등이 이유였다. 2011년 이후에는 국가대표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그는 “독하게 훈련해 올림픽까지 기량을 잘 유지하겠다”며 비가 내리던 19일에도 등산으로 체력을 다졌다. 박나리 제공

꾸준히 몸을 만들며 때를 기다린 그에게 서른이 된 2018년에 기회가 찾아왔다. 그해 전국체육대회에서 2011년 이후 7년 만에 개인종목(자유형 200m) 1위를 차지한 것. 기세를 몰아 이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태극마크를 달며 8년 만에 국가대표(여자 계영 800m)로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에도 출전했다. 박나리, 최정민(22·전북체육회), 정현영(15·거제고현중), 조현주(20·울산시청)가 호흡을 맞춘 여자 계영 800m 한국대표팀은 본선 12위에 오르며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박나리가 계영 경험이 없던 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한 게 큰 역할을 했다. 17년 만의 올림픽 출전에 한 발 가까워진 맏언니를 위해 동생들은 “이 멤버, 이대로!”를 다짐했다.

“지난해 12월 정민이, 현영이와 함께 제주도에서 훈련을 했어요. 세계선수권 때보다 기량이 더 좋아졌더라고요. (다시 한 팀이 되려면) 저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하하.”

세계선수권 당시 한국 경영 최고령 국가대표였던 그는 지금도 ‘최고령 여자 등록선수’다. 스포츠 행정가를 꿈꾸며 학업을 병행(서울대 체육교육과 4학년) 중인 그는 요즘 젊은 선수들에게 롤 모델로도 언급되고 있다.

도쿄 올림픽에서의 목표는 4명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계영 주자 외에 주 종목인 자유형 200m 개인전 출전이다. 꿈을 이루려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에 올라야 한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넷. 쉽지는 않겠지만 몸 관리의 중요성을 알기에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세계선수권 이후 한동안 컨디션이 뚝 떨어졌기에 올림픽 1년 연기가 개인적으로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어렸을 때는 국가대표 타이틀이 쉽게 따라오는 거라 착각했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피나는 노력이 없다면 힘들다는 걸 깨달았어요. 준비할 시간이 더 주어진 만큼 독하게 몸을 만들어서 후회 없이 마지막 올림픽을 치러보고 싶어요.”

오전부터 비가 내린 19일, 그는 서울 노원구 불암산 정상에서 찍은 ‘인증 사진’을 보내왔다. 마지막 올림픽을 향한 준비는 오늘도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