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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100년 연재 요청받고 바뀐 인생… 세상이 놀랄 ‘전봉준 평전’ 내놓을 것”

입력 | 2020-04-22 03:00:00

[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내 삶 속 동아일보]
<10> 소설가 겸 역사학자 송우혜




소설가 송우혜 씨는 본보에 동학 100주년 연재를 하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후 한국사 석·박사 과정을 밟아 역사학자가 됐다. 동아일보DB

소설가이자 역사학자인 송우혜 씨(73)는 역사적 사실에 전문적 고증과 작가적 상상력을 결합해 ‘윤동주 평전’ ‘마지막 황태자’ 같은 굵직한 평전이나 역사소설을 주로 써왔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는 그가 천착해온 중요한 소설적 주제였다.

그런 그에게 동아일보는 1980년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으로 작가의 첫발을 뗄 수 있게 해줬을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 고증한 힘 있는 역사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1993년 11월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장에게서 이듬해 동학(東學) 100주년을 맞아 기획물 연재를 제안 받은 것이 계기였다.

“세상적인 성공이나 관심보다는 ‘쓰고 싶은 걸 쓰자’는 것이 작가로서 지켜온 소신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다음 해 신년호부터 ‘동학 100년’을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겁니다. 처음에는 ‘나는 동학을 모른다’고 손사래 치며 거절했죠.”

사실 그전에 전문 역사서를 읽으며 동학을 공부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에게 납득되지 않는 영역이 많았다. 예를 들어 동학 2차 기의(起義) 때 수만의 신도를 거느린 대접주 김개남과 손화중이 왜 백면서생인 전봉준의 수하에 들어갔는지 같은 핵심 문제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했다.

하지만 “선생이라면 할 수 있다”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동아일보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직접 연구해서 내 것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연재를 맡았다.

곧 지옥이 시작됐다. 동학을 다룬 기존 서적들을 맹렬히 찾아 읽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해결의 실마리를 경기 과천시에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찾았다.

“국사편찬위에서 동학운동 전후의 1차 사료를 구해 읽으면서 동학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 기밀문서인 정보보고서, 동학이 일어나고 퍼진 지역 조선인의 체험 기록 등 당대 사료들 안에 동학의 실상이 눈부시도록 생생하게 살아 있었거든요.”

그는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전봉준이라는 영웅의 진정한 위대함을 발견하고 깊이 전율했고 행복함을 느꼈다. 그렇게 1994년 1월 1일부터 시작한 ‘근대화 1세기 특집 동학 100년’ 연재는 ‘동학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 속에 마무리됐다.

연재를 마치고 나자 오히려 아쉬움이 찾아왔다. ‘대체 어떻게 이토록 위대하고 장렬한 역사가 그토록 초라한 그늘에 묻혀 있었던가’ 싶어서였다. 작가로서 새로운 목표와 사명감이 싹텄다. 전봉준에게 매혹된 송 씨는 ‘세상에 그를 제대로 알릴 평전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정식으로 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치열하게 고증하고 연구해 쓴 글이 ‘소설가의 소설’ 정도로 치부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2003년 이화여대 사학과 대학원에 진학했고 2009년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오직 독자에게 전봉준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일’이었다.

건강이 나빠진 데다 먼저 시작한 다른 작업에 쫓기며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전봉준 평전을 내놓는 것은 여전히 그의 일생의 숙제다. 그는 “정말 자랑스러운 이 영웅을 제대로 평가하고 조명하는 일을 해내고 싶은 마음이 열렬하며 꼭 그렇게 하겠다”며 “내 인생에 이 결정적인 꿈을 심어준 동아일보가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