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득표 정당 해체 주장은 무리… ‘숨은 보수표 없다’ 주장도 거짓 섣부른 자학은 냉정한 반성 아냐 통합당, 계파 공존에서 길 찾아야 중도로의 확장과 대선 전망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물론 41.4%의 득표는 아깝게 지기에 딱 좋은 수치다. 그래서 지역구에서 대패했다. 그러나 아깝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는 게 뻔한데도 ‘정신 승리’만 외친 것은 아니다. 총선 전 전망은 코로나19 위기가 문재인 정부의 온갖 실정을 뒤덮으면서 잘하면 통합당이 민주당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였다. 다만 한선교의 어처구니없는 비례대표 공천부터 왜 했는지 알 수 없는 세월호 막말과 그 대처까지 최악의 선거 관리가 이어지면서 접전 지역이 대부분 민주당 쪽으로 넘어간 것이 대패의 원인일 것이다.
숨은 보수표가 없었다는 것도 자학적인 분석이다. 이번 총선은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이 매주 실시하는 정당 지지도 조사가 실제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 보여주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했다. 여론조사에서 지난 3년간 통합당의 지지도는 20% 전후에 머물렀지만 이번 투표에서 40%를 넘겼다. 숨은 보수표가 있었지만 이기지 못한 것일 뿐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숨은 보수표는 상당히 컸다.
통합당은 황교안과 김종인의 어울리지 않는 결합으로 총선을 치렀다. 서로 욕할 것 없다. 김종인을 불러들인 황교안이나 황교안이 부른다고 온 김종인이나 똑같다. 황교안은 사퇴의 변으로 ‘화학적 결합이 되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황교안이 유승민과도 화학적 결합을 못 했는데, 김종인과 화학적 결합을 할 리가 없다. 한배를 탔던 이상 황교안 유승민 김종인 모두 누가 더 책임이 있냐고 따지는 것이야말로 품위 없는 짓이다.
한쪽에서는 통합당이 꼰대당 체질을 벗지 못해 졌다고 비판하고, 한쪽에서는 통합당이 정체성을 훼손하다가 졌다고 비판한다. 진실은 꼰대당 체질을 벗으려 노력했으나 어설픈 중도 흉내로 끝났다는 데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김종인의 중도 성향이 탐난다 할지라도 일단은 김무성·유승민계와의 화합적 결합이 중요하고, 그런 결합이 이뤄진 상황에서 더 큰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
보수정당의 약점이 계파정치를 할 만한 도량이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친이계가 친박계를 박해하는 바람에 친박계가 탈당해 친박연대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친박계가 김무성·유승민계를 박해하는 바람에 김무성·유승민계가 탈당했다가 김무성계가 먼저 돌아오고 유승민계가 총선을 앞두고서야 뒤늦게 돌아왔다. 이 정도 경험이 쌓이며 불행을 겪었으면 서로 공존하는 정치를 모색할 때도 됐다.
이번 총선에서는 충청 지역의 정진석과 김태흠의 저력이 돋보였다. 인천의 윤상현은 또다시 예상을 뛰어넘었다. 대구에서 김부겸을 이긴 주호영, 부산에서 김영춘을 이긴 서병수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험지에 차출돼 아깝게 패배한 사람 중에서 오세훈 같은 이는 당선자와 마찬가지로 대우해야 한다. 유승민 홍준표는 출마나 당락 여부와 관련 없이 늘 보수정당의 인재다. 5060세대가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주장도 3040세대 정치인이 해야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들이 중심이 돼 계파와 세대를 뛰어넘는 정치를 해 보인다면 통합당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황교안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나간 것은 패배 뒷면의 수확이다. 선거 결과가 어정쩡해서 남아 있었다면 정말 골치 아플 뻔했다. 아직도 남긴 했지만 비호감 의원들이 대거 공천과 선거에서 탈락한 것도 생각해 보면 나쁠 게 없다. 통합당이 살아나려면 빨리 대선의 깃발을 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겸손하게 찾아보면 그런 인물이 없지도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