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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 이기는 ‘상생의 도시락’ …취약계층에 배달

입력 | 2020-04-22 18:03:00


“먼발치에서 도시락을 챙겨 가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합니다.”

21일 오전 서울 송파구에서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둘러멘 김지수 씨(28).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한 주택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주소를 재차 확인하던 그는 가방에서 도시락 하나를 꺼내 문 앞에 놓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집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한데 김 씨는 부리나케 골목 어귀로 몸을 감췄다. 다소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이 나와 도시락을 챙겨 들어갔다. 김 씨는 “직접 접촉을 피하려고 떨어져서 지켜본다”고 했다. 이윽고 그는 다른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의 풍경을 바꿔버린 지금, 서울에서 작지만 소중한 ‘상생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송파구에서 지난달 말부터 취약계층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마을&청년과 함께, 살만한 송파’란 프로젝트다. 장사가 안 되던 식당은 다소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팔고, 청년은 사회봉사를 하며 일자리도 얻는 일석삼조 프로그램이다.


김 씨도 사회복지사를 꿈꾸는 취업준비생. 그는 이날 40분가량 동네를 돌며 취약계층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했다. 노크 대신 전화로 배달을 알리면 “덕분에 끼니를 해결했네. 정말 고마워”란 주름진 목소리가 감사를 전했다. 김 씨는 “요즘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좋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어 제가 더 고마울 뿐”이라 했다.

‘마을&청년…’는 송파구가 취약계층에 제공하던 점심식사를 전달할 방법을 고민하다 찾아낸 묘수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와 전달을 맡을 청년층(만 19~34세)을 참여시켰다. 3인 미만의 작은 동네식당에서 도시락을 만들면, 지역 청년들이 일주일에 2번 정도 배달한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식당들로선 ‘가뭄에 단 비’와 같았다. 송파구에서 돈가스 가게를 운영하는 정종혁 씨(34)는 “하루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 종업원도 내보낼 만큼 어려웠다”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월 200만 원 정도 고정 수입이 생겨 숨통이 트였다. 어려운 분들까지 도울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고 고마워했다.

청년들도 반색했다. 배달료는 건당 3000원(교통비 별도)으로 크진 아니지만, 좋은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자긍심을 얻었다. 배달에 참여한 30대 김모 씨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어 절망스러웠다. 벌이가 크진 않아도 주변 이웃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송파구의 ‘마을&청년…’에는 현재 자영업체 9곳과 청년 54명이 참여한다. 취약계층 260명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송파구 관계자는 “좋은 취지가 알려지며 지금도 40명이 넘는 청년들이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며 “상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지역사회 프로그램을 다른 지역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고 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강승현 기자 byhu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