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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오거돈 성추행 사퇴, ‘미투’에도 바뀌지 않은 지도층 성윤리

입력 | 2020-04-24 00:00:00


오거돈 부산시장이 시청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어제 전격 사퇴했다. 오 시장은 이달 초 20대 계약직 여성에게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고, 이것이 강제 추행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후 피해 여성이 공개 사과와 시장직 사퇴를 요구하자 오 시장은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퇴 시기를 4·15총선 이후로 늦춰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내용을 법무법인을 통해 공증 받았다. 대한민국 제2의 대도시 시장이 집무실에서 성추행을 저지르고, 총선을 의식해 사과 및 사퇴시점을 조율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연출가 이윤택 등 지도층,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낙마하고 구속된 게 불과 2년여 전이다.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드러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추악한 뒷모습에 온 국민은 경악했고, 이를 일회성 폭로나 처벌을 넘어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키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간의 미투 운동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지도층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낮고 개선되지 않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 시장은 당선 후 한 회식 자리에서는 젊은 여직원들을 양 옆에 앉혀 물의를 빚자 “잘못된 관습과 폐단을 안일하게 여겼다”고 사과까지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산하기관에서 잇따라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자 “뿌리 뽑아야 할 구태”라며 일벌백계를 지시하고, 시는 물론이고 산하기관 및 위탁기관 전 직원에게 성인지 감수성과 인권 교육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예외였던 것이다. 더구나 사건 발생 시점은 일명 ‘n번방 사건’으로 성범죄에 무감각한 우리 사회에 대한 경종이 한창 울리던 때였다.

어제 정부는 전방위적으로 발생하는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성범죄물 소지도 처벌하는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가 줄지 않는 데는 낮은 처벌 수위도 한몫하는 것이 사실이다. 피해자가 여성 공무원이란 점에서 이번 사건은 직장 내의 상하관계가 작용된 성폭력 범죄로 볼 수 있다. 사과와 사퇴로 끝낼 일이 아니다.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은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 일벌백계해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 경종을 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