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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기술 强國으로 도약할 기회다[동아 시론/성백린]

입력 | 2020-04-24 03:00:00

세계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 관련 제도-규제도 패러다임 전환
韓 진단기술 이미 국제 위상 높아… 문제는 ‘수요 보장’… 결국 정부 몫
제약 벤처기업에도 성장 기회 될 것




성백린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장·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

1984년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의 글로벌 확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을 무렵 미국 보건당국은 2년 내 백신이 개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이후 3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효과적인 백신 후보를 찾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온 세계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의 전파력은 에이즈의 원인인 HIV 바이러스를 능가하며, 사망률은 인플루엔자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고령자와 기저환자에게 높은 치사율을 보이는 코로나19가 개발도상국에 확산되면 공중보건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백신 개발이 1, 2년이면 가능하다는 낙관론이 나오는 반면 10∼15년이 소요된다는 현실론도 대두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80여 종의 다양한 백신 후보가 개발 중에 있고 이 중 5종은 임상 초기연구에까지 진입했다. 단기간 내 백신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근거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해 살아남는 백신은 10% 미만에 불과한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아직 백신에 의한 인체방어 기작(생리작용의 기본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 더구나 백신으로 인해 오히려 감염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백신 개발 중 목격된 골치 아픈 현상이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그리고 코로나19는 동일한 바이러스군에 속하고 코로나19는 사스와 유전적으로 친척에 해당된다. 이러한 높은 개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당장 팬데믹(대유행)을 방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위기(危機)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이듯 팬데믹 위기는 한국의 백신 경쟁력을 크게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백신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주요 사례가 될 것이다. 기존 치료제보다 까다롭게 적용됐던 인허가 조건이 크게 완화될 조짐이다. 전통적으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치료제와는 달리 백신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안전성이 담보되어야만 사용될 수 있다는 규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지금은 백신을 신속하게 보급해 환자 발생을 최소화하는, 더 큰 가치 실현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시급성을 반영하여 최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속승인제도를 마련했다. 연구개발, 임상승인, 제품의 허가심사 각 단계에서 시행 착오를 최소화하고 개발 기간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선 과거 오랜 기간에 걸쳐 이미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진짜 문제는 개발 완료 시점이다. 우리 모두의 희망은 조기에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것이지만 순수 개발사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바이러스가 사라지면 임상연구 대상도 없고 시장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개발에 성공했으나 수요가 없으면 회사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국가적 위급 상황에 동참한 회사가 사회로부터 버려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개발사에 백신을 전량 수매, 비축을 보장하는 민관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중견 제약사와 아울러 초기단계 기술중심 벤처 꿈나무들도 개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백신 개발과 규제 완화 자체만으로는 백신 상용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대포알을 날리려면 대포가 필요하듯 백신을 제조하는 생산시설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국제적 수준에 걸맞은 ‘의약품 등의 제조나 품질관리에 관한 규칙(GMP)’ 규격의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행스럽게도 산업통상자원부 중심의 백신전용 생산시설 구축이 이미 5년 전부터 기획, 시행되고 있다. 산업부가 시행규칙을 완화한다면 올해 내 조기 완공도 가시화되어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더욱 앞당길 수 있다. 신속 진단키트 보급으로 국제적으로 높아진 우리의 위상은 이제 백신의 개발로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우리의 신속성에 지속성이 더해져야 한다. 본질적으로 장기간의 개발, 투자가 요구되는 백신의약의 특성상 지속적인 정부 정책과 개발 지원이 담보돼야 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19 글로벌 위기를 우리의 백신산업 도약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성백린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장·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