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대통령은 4가지 긴급권을 갖고 있다. 긴급명령권, 계엄선포권, 긴급 재정경제처분권, 긴급 재정경제명령권이다. 앞의 두 개는 안보적인 위기, 뒤의 두 개는 재정·경제적 위기와 관련된 것이다. 긴급 재정경제명령권은 민주화 이후로는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 때 유일하게 발동됐다. 박정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972년 ‘경제 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8·3 경제조치)이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15일까지도 긴급재난지원금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긴급 재정경제명령권 발동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앞서 4·15총선 과정 중 당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정부의 70% 지원에 대해 100% 지원 역공을 펼치면서 긴급권 발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김재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겸 통합당 정책위의장이 100% 지원에 반대하면서 총선 전 입장을 수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어제 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직 제안을 수락한 김종인 씨는 긴급권 발동 요구를 이어갔다.
▷대통령의 긴급권은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을 필요는 없지만 국회의 사후 승인은 얻어야 한다. 20대 국회 임기가 다음 달 29일로 끝난다. 그다음 날부터 21대 국회가 시작된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위성비례정당과 함께 180석을 얻어 국회선진화법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됐다. 국회 사후 승인도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새 국회를 긴급권의 사후 승인으로 시작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가능한 한 긴급권 발동 없이 여야 합의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