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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마스크 겁났지만 누군가 치워야… 해야 할 일 했을뿐”

입력 | 2020-04-27 03:00:00

[코로나19 팬데믹] 일상서 코로나와 맞선 숨은 영웅들




새벽마다 수백 개의 마스크 더미를 치울 때면 겁이 났지만 각자 제 역할을 하는 것이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치웠습니다.”

서울 은평구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주변 청소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 이흥배 씨(52)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새벽마다 폐마스크와 전쟁을 벌였다. 캔, 유리병 등 재활용 쓰레기와 엉켜 있는 마스크는 손으로 일일이 분리해야 했다. 사무실과 주택가가 밀집해 유동 인구가 많은 역 주변 쓰레기통에는 아침저녁으로 폐마스크가 수북이 쌓였다. 마스크를 만지다 혹시 코로나19에 감염됐을까 봐 퇴근 후엔 가족과도 최소한의 대화만 했다.

이 씨는 “감염 우려 때문에 마스크를 치우지 않았다면 혼란이 더 커졌을 것”이라며 “의료진이 최일선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하듯 우리도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뒤로 100일 동안 바이러스와 직접 싸운 의료진 외에도 사회 현장 곳곳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한 ‘숨은 영웅들’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한 영웅들이다. 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나 재택근무가 불가능해 감염 우려가 컸지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줄면서 집배원 박병옥 씨(53)는 이전보다 더 고된 날들을 보냈다. 마스크를 쓰고 수백 개의 주택과 빌라의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숨이 턱까지 찼다. 옷은 금방 땀범벅이 됐다. 마스크를 쓰고 배달하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마스크를 잠깐 내렸다가 항의를 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고 했다. 박 씨는 4·15 국회의원 총선거 공보물 등 꼭 필요한 우편물을 전달하기 위해 자가 격리 가정도 방문해야 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는 “문틈 사이로 들리는 ‘힘내세요’라는 응원에 힘이 났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자광명(법명·66) 씨는 코로나19 사태에도 봉사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점심시간이면 300∼400명이 줄을 섰다. 줄을 선 사람들이 앞뒤 간격을 유지하도록 질서를 잡고, 마스크 착용과 체온까지 확인하다 보니 평소보다 일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그는 “코로나19보다 배고픔이 더 무서운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다들 현장에서 코로나19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밥을 굶으면 전쟁이 되겠느냐”며 웃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안해준 씨(39)는 코로나19로 숨진 확진자 2명의 화장을 맡았다. 감염을 막기 위해 방호복과 고글을 착용하고 일했다. 고인들의 가족은 감염 우려 때문에 모니터로 장례 절차를 지켜봤다.

안 씨는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배웅을 가까이서 받지 못하고 이별하는 고인이라 내 가족을 모시듯 더 예를 갖췄다”며 “집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하지만 모두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해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신지환·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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