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내가 바라보며 자라다 이내 턱도 괼 수 있게 된 벽이 있었다. 벽은 한 폭 정도 뚫려 있어서 키가 아주 작았던 때에도 벽 너머 놀이터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즈음 가장 재미있던 놀이는 이 폭 사이로 줄넘기 줄 한쪽을 떨어뜨려 좌우로 슬슬 흔드는 것이었다.
한참 있으면 아래층에서 누군가 다른 쪽 끝을 확 잡아당겨 줄을 통째로 뺏어가기도 하고, 줄을 톡톡 건드리며 누구냐, 성희냐, 하기도 했다. 내가 한끝을 잡고 있다 손을 놓으면, 약속한 누군가가 아래층에서 떨어지는 줄을 낚아채 주기도 했다.
그 아파트를 떠나 세 번 정도 이사 다니는 동안 시간은 내게 조금 더 쓸쓸한 방향으로 흘렀다. 기다림은 언제나 응답을 받고 사람들은 언제고 반드시 도착한다는 믿음이 사실이고 실제였던 시절. 그렇게 시간이 닿는 것만으로 ‘함께’라 느낄 수 있던 시절이 영영 지나가 버리는 줄도 모르는 채로 나는, 같은 마음이 아닌 시간과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을 아파했고, 힘껏 뻗어도 닿을 길 없는 마음들에 대해, 닿지 못한 채로 함께 걷는 생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야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눌 때에도 모두 각자의 생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함께’라는 믿음보다 먼저 가슴을 쳤고, 이제 건너편에 있는 것은 누구도 매만질 수 없는 당신의 짐, 당신의 상처, 당신의 쓴웃음. 모두는 서로에게 타인이었고 생은 철저히 각자의 몫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 생각이 최선인가. 선택의 차원을 한참 넘어 있는 각자의 삶에 관해 우리는 항상 서로를 비껴가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 만날 수 없음을 무관심의 이유로 삼아버리지 않기 위해, 적어도 타인의 생에 대해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선 그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 생각이 최선인가, 요즘은 그런 질문을 반복한다. 무수한 당신들이 스쳐 지나가는 배경에 앉아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한다.
홍성희 2020년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