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차나 훔쳐서 놀러갈까?”
김모 군(16) 등 친구 사이인 청소년 3명은 18일 오후 11시경 경기 안산에서 ‘그저 놀고 싶은 마음에’ 차를 훔쳤다. 한 고급 승용차가 문이 잠기지 않은 채 키가 꽂혀 있던 걸 발견하고선 인천 중구 월미도까지 약 40km를 내달렸다. 이들은 범행 6시간 만인 19일 오전 5시경 특수절도와 무면허 운전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달 29일 13세 청소년 8명이 서울에서 훔친 차를 몰다가 대전에서 아르바이트 대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다. 이들을 엄중 처벌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8일까지 약 99만 명이 동의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차량 절도 및 무면허 운전은 뚜렷한 대책 없이 최근 몇 년 동안 끊이질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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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가 최근 수도권에서 경찰이 적발한 10대 차량절도 및 무면허운전 사건 5건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모두 닮은 부분이 많았다. △여럿이 떼를 지어 범행했고 △문이 잠기지 않은 채 키가 꽂힌 차량이 대상이었으며 △지역을 넘나들며 무분별하게 질주했다.
경찰에 따르면 3월 수도권에서만 최소 청소년 12명이 삼삼오오 차량을 훔쳐 운전하다 체포됐다. 14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선 보호관찰 중이던 전모 군(14)과 김모 군(13)이 렌터카를 훔쳐 약 20㎞를 질주하다가 적발됐다. 1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선 13세 청소년 6명이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훔친 K5와 쏘나타를 몰다가 모두 검거됐다.
27일에도 서모 군(13) 등 가출 청소년 4명이 인천 부평구에서 벤츠를 훔쳐 타고 이틀에 걸쳐 서울 등을 휘젓고 다니다가 걸렸다. 뺑소니 사고 정황이 조사 도중 드러나기도 했다. 31일엔 김모 군(16) 등 2명이 충남 당진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카니발을 훔쳐 타고 경기 평택까지 최소 50km가 넘는 거리를 무면허로 운전했다. 이들은 다음날 노상에서 붙잡혔다. 김 군은 경찰 조사에서 “백미러가 펼쳐져있으면 키가 꽂혀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런 차량들 위주로 물색했다”고 진술했다.
● 지난해 10대 무면허운전으로 1000여명 사상
청소년 무면허운전은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면허 운전으로 사망한 163명 가운데 10대가 몰았던 차량에 숨진 희생자는 18명(11%). 부상자 역시 1016명으로 전체(7445명)의 16%에 이르렀다.
갈수록 성인들의 무면허 운전은 줄어들지만 청소년의 무면허 운전은 꾸준하게 이어진다는 점도 문제다. 대검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무면허 운전 범죄는 684건으로 전체(5177건)의 13%나 됐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무면허 운전 방지책에 대해 아직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 차량 절도와 무면허 운전을 해결하려면 자동차에 지문 인식 기능을 탑재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아쉽다”고 지적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은 여럿이 모이면 과시 욕구가 강하고 따돌림 당하기 싫어 쉽게 범죄에 동조하거나 방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규범과 법질서에 대한 의식을 강화하는 효과적인 제도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