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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블랙홀 될 개헌 논의, 지금은 언급 자체가 부적절하다

입력 | 2020-04-29 00:00:00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개헌 관련 함구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27일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개헌을 거론하고 나왔다. 송 의원은 4·15총선에서 다시 당선됨으로써 21대 국회에서 5선 의원이 되고 8월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의지까지 보인 여당의 중진 의원이다. 그는 개헌의 구체적 방향으로 대통령 중임제와 책임총리제 도입을 주장했다.

개헌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논의의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경제 전시 상황’을 언급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경험하지 못한 세계 경제침체’를 우려했다. 국가와 국민이 생활방역으로의 전환과 경제회복에 총력을 기울여도 힘이 부칠 판이다. 개헌 논의가 정국의 중심이 되는 순간 모든 걸 빨아들일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그것을 모르지 않을 여당 5선 의원이 섣불리 개헌을 거론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송 의원의 발언은 범진보진영이 190석을 얻어 21대 국회에서 개헌선에 근접한 상황을 배경에 둔 것이다. 그러나 개헌선에 근접했다는 것과 개헌선을 확보했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얘기다. 개헌선에는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이 힘을 합해도 여전히 10석이 모자란다. 미래통합당과의 합의 없이 개헌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개헌 추진은 실패할 경우 오히려 개헌의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범진보진영이 개헌선을 확보했다고 가정해도 여야 합의 없는 개헌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여야 합의의 전통을 깨고 선거법을 개정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바람에서 총선에서 위성비례정당 출현 등 후유증이 컸다. 개헌은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한다.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얼마나 큰 국민적 분열을 가져올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향후 개헌 논의의 적절한 시점은 코로나19로 초래된 경제위기에서 빠져나올 때다.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더 이상 정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 국면이다. 진정으로 개헌을 원한다면 지금만은 개헌 언급을 삼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