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변했는데 과거 머물러 국민 외면… ‘반공-시장경제’ 틀 넘는 변화 절실 균형성장과 평화, 보수가치로 만들고 약자 위한 온정적 보수의 길 걸으라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
한국 보수는 무능하고 오만하며 분열됐기 때문에 졌다. 보수는 왜곡된 현실 인식 속에 갇혀 시대 변화를 읽는 능력이 부족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허황된 생각 속에서 과거 잘못에 대해 참회하지 않았다. 고질적인 계파주의에 빠진 채 대안 없는 투쟁과 품격 없는 행동으로 비호감의 퇴행적 수구 집단으로 간주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진보 절대 우위 정당 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는 어떻게 재건돼야 하나?
첫째, 시대정신에 맞게 보수의 정신을 재정립해야 한다. ‘보수의 재구성’의 저자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보수는 시민 참여와 시민적 덕성을 중시하는 자유공화주의를 핵심 가치로 장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보수의 가치로는 부족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진보 성향의 30, 40대 젊은 세대를 포용하기 위해 보수는 관성에 갇힌 생각에서 벗어나는 변화가 필요하다. 보수는 제3의 길을 가야 한다.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를 배격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의 시각에서 포용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제 ‘압축 성장’, ‘시장경제’, ‘반공(反共) 보수’를 뛰어넘는 ‘균형 성장’, ‘약자 배려’, ‘평화 보수’로 변해야 한다.
셋째, 서민적 보수와 젊은 보수의 길을 가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1977년에 서민을 위한 획기적인 복지 정책으로 전 국민 의료보험제를 채택했다. 영국 보수당은 부자 감세가 아니라 서민 감세 정책을 펼쳤다. 2006년 스웨덴 총선에서 승리한 만년 야당인 보수당은 2003년 당시 38세의 젊은 프레드리크 레인펠트를 새로운 당수로 내세웠다. 메트릭스 리서치가 실시한 총선 사후 조사에서도 74%가 통합당이 변하기 위해서는 “30, 40대 세대교체로 당의 중심인물을 바꿔야 한다”고 응답했다.
보수 재건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만약 이번 기회도 날려버리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하게 되고 현 정부의 목표인 주류세력 교체와 체제 변혁은 완성될 것이다. 보수에 실낱같은 희망은 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통합당의 지역구 득표율은 각각 49% 대 41%였다. 비례 위성정당 득표율도 더불어시민당(33.4%)과 미래한국당(33.8%) 간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메트릭스 조사 결과 여당이 압승을 거둔 이유로는 ‘통합당이 잘못해서’(61%)가 ‘민주당이 잘해서’(22%)의 약 3배였다. 문재인 정부가 잘해서 압승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절대 분열한다. 향후 보수가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등 과거 잘못에 대해 철저하게 참회한 뒤 당의 중심인물을 젊은 세대로 바꾸고, 국민이 공감하는 파격적인 어젠다를 제시하며,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온정적 보수의 길을 걸어간다면 재건이 가능하다. 단언컨대, 참회 없는 혁신은 허구고, 대안 없는 투쟁은 공허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