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이동 제한 조치 등 규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팬데믹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정부의 개입이 커지자 세계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다. 샌디에이고=AP 뉴시스
이설 국제부 차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구촌을 덮친 지 넉 달째. 한편에선 간토 대지진 때처럼 악의에 찬 선동이 난무한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최근 기사에서 “코로나19가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다양한 테러리즘이 저마다의 전략으로 활개를 치고 있다”고 했다. 팬데믹(대유행)으로 인한 경제난, 고립, 빈부갈등이 인간의 악한 본성을 자극해 테러리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극단적 인종차별이다. 14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최근 인도 수도 뉴델리의 변두리에서 한 무슬림 청년이 힌두교도들에게 끌려가 매질을 당했다. 지역 사회에 고의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게 ‘죄목’이었다. 최근 인도 내 무슬림은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돼 공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중순 뉴델리 니자무딘에서 열린 종교집회가 감염 확산의 진원으로 알려진 게 시작이었다. 이후 일부 급진 힌두교도들은 ‘무슬림이 식수에 바이러스를 옮긴다’는 음모론까지 퍼뜨리며 노골적인 탄압에 나섰다.
동양인에 대한 혐오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에 대한 반감은 서구에 국한된 게 아니다. 포린폴리시는 인도네시아의 한 연구원을 인용해 “최근 이슬람계 위구르 소수민족에 대한 중국의 탄압까지 맞물려 인도네시아 내 중국인들이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차별은 증오와 혼란을 낳고, 이는 테러가 확산될 수 있는 양분이 된다. 기존 극단주의 테러단체들은 혼란을 틈타 서방세계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고 있다. 테러단체 알카에다는 9일 영문 선전매체에서 코로나19를 ‘미국 경제와 생활방식을 강타한 쓰나미’로 정의하고 “금융 전문가인 무슬림들은 미국 경제의 취약점을 찾아 공격하라”고 선동했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한 지지자는 최근 선전매체에서 “이동제한 조치 등으로 경찰들이 골목에 배치돼 있어 공격이 용이해졌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 사이에서는 “팬데믹을 이용해 그들을 무찔러야 한다. 전염병은 기회”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에 우왕좌왕하는 허점을 이용해 테러리스트나 범죄조직이 세를 불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보다 훨씬 까다로운 기준으로 방역을 취하며 이를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멕시코 마약 범죄조직들은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를 입은 서민들에게 생필품 등을 나눠주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코로나19가 생화학 테러를 부추길 것이라는 잿빛 전망도 나온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브리핑에서 “이번 팬데믹은 향후 생화학 테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보여줬다. 생화학 테러가 일어날 위험성도 커졌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폭발한 경제난, 사회 불안, 고립감 등을 양분 삼아 테러 수법도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비대면 접촉의 보편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온라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킬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각국 정부는 각종 폭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테러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는 해결책의 일부 조각에 불과하다. 모두가 지닌, 그러나 대체로 잊고 지내는 연대와 사랑의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할 때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