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사재기가 벌어졌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북한이 27일 유튜브를 통해 상점 물가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박을 내놓았다. Echo DPRK 유튜브 계정 캡처
주성하 기자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사상 최강의 대북제재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명색이 국가인데 지난해 수출액은 2억 달러도 안 됐다. 한 달 수출이 1700만 달러 수준으로 10년 전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12월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들이 철수하면서 큰 돈줄이 또 막혔다.
김정은은 이런 위기 상황을 공포 통치로 돌파하려 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그는 올 상반기 여러 간첩 사건들을 조작한 뒤 여기저기서 공개 처형을 진행해 사회에 두려움을 심어주려고 계획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이 계획을 바꾸었다.
방역 지침 위반으로 4월 중순까지 처형된 사람이 700명이 넘으며, 해임된 간부가 300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간첩 사건을 조작할 필요가 없다.
김정은 잠적 와중인 19일과 20일 평양의 대형 상점인 ‘광복지구상업중심’에서 가구당 중국산 콩기름 5kg을 10달러에 판매했다. 이는 코로나19 발생으로 국경을 폐쇄하기 전 가격이다. 평양 사람들은 상점에 달려가 기름을 사는 데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사실 알고 보면 이 콩기름은 여러 돈주들에게서 약탈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말 김정은은 국가전략물자 수입 계획을 승인하면서, 1월 말부터 차단했던 북-중 국경을 살짝 열었다. 3월 착공한 평양종합병원 건설에 필요한 건재, 장비 부속품 등을 중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 사람들을 내보내지 않고 중국 화물 트럭으로 실어오라는 단서도 달았다. 중국 단둥에서 화물트럭 임대비는 4∼5배 뛰었다. 중국 기사도 북한에 들어갔다 나오면 보름 동안 격리돼야 하기 때문에 한 번 운행에 우리 돈으로 300만 원 정도 불렀다. 며칠 뒤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의 운송 물량인 트럭 30대가 신의주 세관에 도착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조사가 시작되자 숨었던 업자들은 3일 만에 전부 체포돼 군법으로 처벌받게 됐다. 35% 정도의 이윤을 바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수백만 달러어치의 콩기름과 설탕을 들여오려던 무역업자들은 돈도 목숨도 잃게 됐다. 이를 빼앗아 상점에 팔아 번 돈은 고스란히 김정은의 주머니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세관이 잠시 열린다는 정보는 어떻게 새 나갔을까. 김정은 측근에서 새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건이 한 번으로 끝났다면 무역업자를 낀 고위 간부의 일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수상한 점이 있다.
20일부터 평양에서 갑자기 사재기가 벌어졌다. 올해 말까지 무역을 일절 못 한다는 소문이 하루 사이 퍼지면서 상품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 됐고, 주민들이 싸우면서 물건을 사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그런데 며칠 뒤 유언비어를 유포시키고 물가를 올렸다는 죄명으로 여러 판매업자들이 잡혀갔다. 이제 이들이 갖고 있던 물자가 압류돼 시중에 팔리게 되면 그 돈은 또 김정은이 갖게 될 상황이다. 이쯤 되면 김정은이 코로나19 상황을 활용해 돈 있는 사람들을 약탈하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김정은은 지금 자기에게 쏠린 세계의 시선을 느긋하게 즐기면서 어디엔가 숨어 상인들을 약탈할 새로운 꿍꿍이를 열심히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