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코로나19 충격 속 ‘재택경제’ 성장 CEO도 진행자 변신… 로켓도 팔아 판로 막힌 중소업체-상인 생명줄
중국 후난성 쌍즈현의 위안훙웨이 부현장(오른쪽)이 18일 현지의 모바일 쇼핑몰 생방송 스튜디오에서 현지 소수민족 투자족의 전통복장을 한 채 특산품을 소개하고 있다(왼쪽 사진). 중국 후베이성 언스시에서 차를 재배하는 농민 란전유 씨가 중국 유명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의 생방송 쇼핑 채널을 통해 차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 출처 신징보·타오바오 캡쳐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돌파구를 찾던 그는 중국 유명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淘寶)의 생방송 쇼핑을 떠올렸다. 타오바오는 주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용하기에 모바일 쇼핑몰이나 다름없다.
란 씨는 지난달 1일부터 차 예약 판매를 시작했다. 이달 15일 언스시 봉쇄가 풀리자 생방송 판매도 본격화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차 농장으로 가 찻잎을 따고 오후 11시경 차를 발송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타오바오로 중계했다. 최근에는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매일 16시간 생방송을 진행하며 차를 팔고 있다.
란 씨는 24일 통화에서 “매일 평균 1만 위안(약 170만 원)어치의 차가 팔린다. 3만 위안을 넘길 때도 있다”며 웃었다. 그가 2009년에 연 마을 상점의 하루 판매액이 1만 위안 정도였는데 코로나19로 60%가 줄었지만 생방송 쇼핑으로 극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란 씨는 “타오바오 생방송 한 달 만에 거둔 하루 평균 매출액이 11년 일군 가게의 매출과 비슷하다. 1명만 있으면 생방송이 가능하기에 월세도, 직원 임금도 들지 않는 가게를 하나 새로 연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카메라 1대만 있으면 중국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차를 팔 수 있다”며 “코로나19 발생으로 중국 모든 산업이 타격을 받았지만 진입 문턱과 비용이 낮은 모바일 생방송 쇼핑에 기회가 있었다”고 했다.
○ “매일 저녁 모바일 생방송 쇼핑”
베이징(北京)의 직장인 위(于·25·여)모 씨는 코로나19 전에는 단 한 번도 모바일 생방송 쇼핑을 본 적 없다. “친구들이 왜 즐겨 보는지 도통 이해 안 됐다”던 그가 요즘은 매일 오후 8시 반이면 유명 모바일 생방송 쇼핑 진행자 리자치(李佳琦·27)의 방송을 챙겨보는 열혈 시청자가 됐다.
리자치는 화장품, 간식 등을 주로 판매한다. 위 씨는 1주일에 2번은 상품을 산다.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못할 때가 많다. “인기 상품은 1초도 안 돼 다 팔려요.” 오후 11시까지 이어지는 리자치의 방송은 접속자가 1000만∼2000만 명에 달한다.
위 씨는 코로나19로 한동안 재택근무를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방송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자치가 카메라 앞에서 직접 염색을 해 실제 색깔을 보여줘 가며 염색약을 파는 생동감에 큰 흥미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립스틱을 팔 때에는 생방송 내내 직접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위 씨는 “이런 재미에 생방송이 끝날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고 말했다.
○ 농촌 간부들도 앞다퉈 생방송
중국인터넷정보센터는 28일 ‘중국 인터넷 발전상황 통계 보고’에서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 생방송 쇼핑 이용자 수가 2억6500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중국 시장 조사기관 아이미디어 리서치는 올해 전자상거래 생방송 쇼핑의 판매액이 1300억 달러(약 158조 원)로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생방송 이용자는 5억260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전체 인구 14억 명의 40%에 육박하는 숫자다.
쉐쓰위안(薛思源) 타오바오 생방송 자원 총책임자는 24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동 제한으로 출근하지 못한 기업 최고경영자(CEO), 상점 직원, 유명 셰프까지 생방송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생방송 판매 범위도 코로나19 이전에는 드물었던 집, 자동차 등으로 확대됐다”고도 전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타오바오에서만 하루 200∼300차례 차량을 판매하는 각종 생방송이 방영된다고 한다.
리자치 못지않은 모바일 쇼핑몰 생방송 분야의 스타 웨이야(薇婭/·33·여)는 1일 타오바오에서 상업용 로켓 콰이저우(快舟)-1호를 판매했다. 로켓 1대당 가격이 4000만 위안(약 69억 원), 계약금이 50만 위안이었던 만우절 같은 이 이벤트는 실제였다. 생방송 시작 뒤 약 800명이 계약금을 지불했고 한 위성기술 기업과 로켓 관련 기업이 최종 구매 의사를 밝혔다.
전자상거래 생방송 시장의 고용 창출 효과도 상당하다. 채용정보 사이트 즈롄자오핀(智聯招聘)에 따르면 지난달 전자상거래 생방송 쇼핑 업계의 고용 수요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133% 늘었다.
이에 중국 지도부까지 생방송 시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 지도부는 올해까지 빈곤을 완전히 퇴치해 내년 샤오캉(小康)사회(전반적으로 풍족한 사회)를 전면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19로 목표 달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던 터였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일 산시(陝西)성 시찰 때 자수이(柞水)현 농촌 마을의 생방송 판매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날 밤 생방송 스튜디오에 자수이현 장페이(張培) 부현장이 나타나 직접 특산물인 목이버섯을 팔았다. 중국에서 2200만 명이 접속했고 생방송 시작 뒤 12만2000t 이상의 목이버섯이 다 팔렸다. 신징(新京)보는 지난해 4개월 동안의 판매량과 맞먹는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전역에서 수백 명의 지방 간부들이 생방송 진행자로 등장해 지역 특산물을 팔고 있다.
○ “작은 가게 점주 등 모두에 혜택”
모바일 생방송 쇼핑은 적은 비용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판로에 타격을 입어 폐업이 속출하고 있는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에게는 재기의 기회를 주는 생명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쉐쓰위안 총책임자는 “생방송은 농민, 작은 가게 점주, 중소업체 판매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도구”라고 말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자이징지’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중국 경제의 디지털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에서 활동 중인 고영화 SV인베스트먼트 고문은 “자이징지가 사람들의 소비 습관과 수요를 바꿔 인터넷을 통한 소비 방식이 다양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룽(胡榮) 홍콩 중문대 교수는 BBC 중문판에 “모바일 생방송과 소비의 결합은 5세대(5G) 이동통신망 시대에 더욱 발전할 것”이라며 “사람들의 모든 일상 활동이 디지털 플랫폼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코로나19로 크게 침체된 소비 능력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디지털경제 전환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에 따르면 중국 인터넷 이용자 9억400만 명 가운데 72.4%인 약 6억5000만 명의 월 소득이 5000위안(약 86만 원)이 안 된다. 1000위안(약 17만 원) 미만도 27.9%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임금이 크게 줄어드는 바람에 다른 직장을 찾고 있는 베이징의 왕(王·33·여)모 씨는 “코로나19 기간 때 못한 소비를 보상심리로 크게 늘리는 ‘보복성 소비’가 나타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겐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