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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이 마지막 식사 되다니”… 동료 잃고 오열

입력 | 2020-04-30 03:00:00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
“건물안 남편, 연락 안돼요” 발동동
희생자 상당수는 하청업체 근로자… 일부는 물류센터 근처서 함께 숙식




화재 현장 수색하는 소방대원 29일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는 오후 11시 현재 38명이 목숨을 잃을 만큼 대형 화재였다. 소방관들은 늦은 밤까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현장에서 작업을 벌였다. 이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사람아, 컵라면 말고 좋은 거라도 먹고 가지….”

29일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경기 이천시의 물류센터 공사장 앞. 이곳에서 만난 하청업체 직원 강모 씨(52)가 숨진 동료를 떠올리면서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불이 난 물류센터 옆 동에서 일하던 강 씨도 폭발과 화재로 인한 불길과 연기에 그을려 얼굴이 시커메져 있었다. 강 씨는 “‘펑’ 하는 소리가 나서 같이 점심을 먹곤 했던 동료 작업자 3명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씨는 이날 점심으로 작업 동료 조모 씨(35)와 함께 컵라면을 먹었다. 돈을 아낀다면서 끼니를 거르는 조 씨를 위해 강 씨가 컵라면 2개와 찬밥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조 씨는 중학생 딸을 홀로 키우면서 착실히 돈을 모았다고 한다. 강 씨에게 조 씨는 “딸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면서 3개월 내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던 동료였다. 강 씨는 “이게 마지막 식사일 줄 알았다면 더 좋은 걸 사다줄걸…”이라며 말을 흐렸다.

희생자들이 안치된 이천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따금씩 유가족과 동료 작업자들의 한숨 소리만 들렸다. 휴대전화가 울릴 때마다 유가족이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만 곳곳에서 목격됐다. 유가족 이모 씨(42)는 “남편이 건물 안에 있었고 연락이 안 된다는 얘기만 들었다”며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작업자 12명을 이천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기고 유전자정보(DNA)를 채취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시신이 불에 심하게 타 지문으로는 작업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숨진 38명 중 상당수는 하청업체 근로자였다. 이들은 하루에 10만∼15만 원을 받고 일했다고 한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하는 등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일부는 물류센터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일했다고 한다. 불이 난 이날도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인 물류센터 건물의 모든 층에서 78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숨진 김모 씨(50)는 이날따라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동료 작업자들은 김 씨를 “유독 말이 없던 친구”라고 기억했다. 그런 김 씨가 점심시간엔 “딸한테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며 동료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김 씨가 딸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여두고 출근했는데, 딸이 “아빠 고맙다”며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동료 작업자 A 씨는 “김 씨가 그렇게 환히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퇴근 후 딸을 볼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라고 했다.

불이 난 건물에서 연락이 두절된 오모 씨(45)의 형(65)은 장례식장에 앉아 동생의 휴대전화로 연신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음이 울릴 때마다 오 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중국동포인 오 씨는 딸의 양육비를 벌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뒤 건설 현장을 다녔으며, 28일부터 물류센터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천=김태성 kts5710@donga.com·한성희 / 고도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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