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델 록산 굴드
우아한 그레이, 편안한 은색, 혹은 플래티넘 블론드처럼 환한 황금빛.
한때 반갑지 않은 노화의 상징이나 자기관리 소홀로 여겨졌던 흰머리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변화를 당당하게 수용한 이들의 자신감과 매력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됐다.
최근 패션 인플루언서 중에서는 그레이 헤어인 노년층이 많다.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 장명숙 씨(68)가 대표적이다. 보이시하게 쇼트 컷한 흰머리에 안경을 낀 할머니이지만 해박한 패션 상식과 스타일링 팁 영상은 조회수가 많게는 296만 건이 나올 정도로 인기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멋지고 기품 있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흰머리를 그대로 살린 실버모델 김칠두 최순화 씨도 젊은 층에게 힙한 롤모델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그레이 헤어에 도전한 후기를 공유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8만 명을 거느린 ‘그롬브레(grombre)’는 흰머리를 기르는 각국 여성의 사진과 경험담을 공유한다. 길게는 수십 년간 반복하던 염색을 중단하고 뿌리부터 점차 하얗게 자라가는 머리를 받아들인 수많은 여성이 염색의 부작용과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얼마나 자유롭고 건강해졌는지를 나눈다. ‘#그레이헤어’ 해시태그가 달린 포스팅은 210만 개, ‘#실버헤어’는 180만 개에 이른다. ‘흰머리 신경 쓰지 않기’ ‘그레이 헤어 운동’ ‘실버 여행’등의 검색어도 함께 인기다.
그레이 헤어 자체가 패션 아이콘이 되면서 어떤 옷을 택해도 멋스럽게 연출하는 방식이 한층 쉬워졌다. 중후한 옷차림만 고집할 필요도 없고 굳이 젊어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데님 롱스커트와 화이트 캔버스에 에코백을 매치하거나 화려한 프린트셔츠에 흰 바지, 선글라스를 낀 모습은 그레이 헤어일 때 더욱 빛이 난다. 화려한 컬러와 과감한 액세서리도 밝은 머리색과 만나 중화되거나 조화를 이뤄 한층 멋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올 블랙의 평이한 캐주얼도 흰머리와 만나면 신선한 매력을 준다. 캐주얼한 가방이나 신발, 레드 립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다.
흰머리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부러 머리를 하얗게 염색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연예인이나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에서는 애쉬그레이, 실버블론드나 실버아이스 같이 밝은 회색이나 은발 느낌의 염색이 덩달아 유행 중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