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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놓고 묵살한 안전규정, 경고만 되풀이한 안전당국

입력 | 2020-05-01 00:00:00


그제 오후 경기 이천시의 한 대형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중경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우레탄폼 단열 공사 중 발생한 유증기(기름이 섞인 공기)가 용접 과정에서 연소되면서 폭발이 일어나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으로 안전불감증, 제도 미비, 관계당국의 소홀한 관리 감독이 지적되고 정부는 재발 방지를 다짐하지만 언제나 그때뿐이다. 이번 참사도 과거의 판박이다.

유증기는 작은 불꽃만 튀어도 폭발할 수 있다. 그런데도 현장에선 공사 기간 내내 우레탄폼 옆에서 용접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현행법은 용접작업 시 가연물질로부터 최소 10m 이상 떨어지거나 불꽃이 튀지 않도록 차단막을 세우도록 했지만, 차단시설은 고사하고 관련된 안전교육조차 없었다고 한다.

당국의 관리감독도 여전히 요식행위에 그쳤다. 참사가 발생한 물류센터는 최근까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유해·위험방지계획서 확인 과정에서 3차례나 용접작업 등에서의 화재 발생 가능성을 지적받았다. 특히 1월 말에는 ‘우레탄폼 패널 작업 시 화재 폭발 위험 주의’라고 콕 짚어 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매번 추후 개선을 약속하고 조건부 적정으로 통과됐다. 점검 때마다 화재 발생 우려가 나오고, 보완이 미비했다면 공사를 중지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사업주에게 안전 규정 준수를 강제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온 사회가 안전불감증을 질타해도 참사가 끊이지 않는 데는 안전 규정을 지키는 것보다 벌금이 더 싸다는 잘못된 인식 탓도 크다. 안전관리 시설과 인력을 갖추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지만 영세한 하청업체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원청업체의 눈치를 보느라 비용 청구도 못해 열악한 상황에서 작업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원청업체의 책임도 의도성 등을 따지다 보니 낮은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공사현장 화재 사고는 무려 40명이 숨졌지만 원청대표에게 부과된 벌금은 고작 2000만 원이었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각종 안전 관련 제도가 마련됐지만 근로자들의 안타까운 희생만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업현장 안전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