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원료 수요 줄고 수출길도 막혀 플라스틱, 새제품이 재생보다 저렴… 수거업체 “돈내고 가져올 이유없어” 정부, 이달부터 공공비축 착수… 지자체에는 수거대금 조정 권고
지난달 27일 경기 포천의 한 재활용품 회수·선별업체에 폐플라스틱이 마대에 담긴 채 쌓여 있다. 수출 감소와 유가 하락으로 재생원료 가격이 떨어지면서 재활용품 수거가 어려워지고 있다. 포천=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27일 찾아간 경기 포천의 한 재활용품 회수 선별 업체. 야외에 늘어선 천막형 창고마다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 더미가 터질 듯이 삐져나와 있었다.
이 업체는 서울 8개 구와 경기 6개 시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한 뒤 재질별로 분류해 각각 재생원료 공장으로 보낸다. 박성준 대표는 “평소에는 창고에 300∼400t 보관되는데 요즘은 거의 700t이 쌓여 있다”고 말했다. 이곳의 최대 보관량인 800t을 넘길까 봐 조바심을 내는 상황이다.
○ 수출·내수 동반 침체에 갈 곳 없는 재활용품
재활용품 가격 하락은 곧 수거업체의 위기다. 지방자치단체가 일괄 수거하는 단독주택과 달리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은 대부분 수거업체가 돈을 내고 가져간다. 아파트 주민은 부수입을 얻고, 수거업체는 재활용품을 되팔아 이득을 남기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거업체 입장에서 돈을 내고 돈 안 되는 재활용품을 가져갈 이유가 없는 국면이다.
여기에 수거업체를 흔드는 복병이 또 있다. 바로 헌옷 수거함 등에 넣는 의류다. 주로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던 헌옷 수출은 코로나19 여파로 확 줄었다. kg당 400∼450원 선의 안정적인 수입원이었던 의류 판매마저 막힌 것이다.
○ 재활용품 공공비축-공공수거 착수
재활용품이 쌓여가자 정부는 이달부터 재활용품 공공비축에 착수한다. 재활용품 시장의 숨통을 잠시라도 틔우기 위해서다. 조만간 페트 플레이크(페트병을 잘게 부순 재생원료)부터 우선 수매할 방침이다.
정부는 또 각 지방자치단체에 재생원료 가격 하락에 맞춰 수거업체와 공동주택의 재활용품 매각 수거 대금을 조정하도록 권고했다. 환경부는 “수거 거부 상황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자체가 공공수거를 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 맞는 지자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생활폐기물 처리에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관내 아파트 배출·수거 상황을 모니터하고 맞춤형 가격 조정을 해야 한다”며 “나아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선별장 역시 재활용품 가격 변동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재활용품의 안정적인 처리를 위해 배출 관리 및 처리 전 분야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