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인사동 거리에 ‘착한 임대인’ 운동을 지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동아일보DB
주애진 경제부 기자
서울 충무로에서 제본업체를 운영하는 송모 씨(63)는 1000만 원 한도의 소상공인 긴급대출을 신청하기 위해 27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서울중부센터를 찾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각종 행사가 취소되자 그 충격이 팸플릿 등을 제작하는 제본업계까지 덮쳤다. 월 매출이 3분의 1로 곤두박질친 지금, 송 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매달 200만 원씩 내는 임차료다. 건물주가 임대료를 깎아주면 정부가 세액공제로 인하분 절반을 돌려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은 그에게 먼 이야기다. 송 씨는 “건물주들도 다 빚내서 산 건물인데 월세 깎아주기가 쉽겠나. 주변에서도 월세 내려줬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다”고 했다.
올 2월 문재인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정부도 착한 임대인들에 대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겠다”며 임대료 인하를 독려했다.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는 올 상반기(1∼6월) 임대료를 인하한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고, 참여율 20% 이상인 전통시장에 화재 안전 시설을 설치해 주겠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 효과는 크지 않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서 오토바이 매매수리업체를 하는 A 씨(51)는 “주변 상인들 중 혜택을 봤다는 사람은 딱 한 명”이라며 “상인회가 조직돼 있는 시장은 말이라도 해볼 수 있지만 개인 자영업자는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깎아준 건물주들의 선의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져야 할 영역에 정부가 앞장서면서 마치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점이다. 취지는 좋지만 민간 계약에 따른 임대료 문제는 처음부터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적은 분야다. 시민들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민간 영역으로 남겨두고 정부는 소상공인 대출 확대 등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에 더 주력하는 게 어떨까.
주애진 경제부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