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22일
“일한 병합 당시부터다.”
- 어찌해서 그 같은 생각을 하게 됐나.
7, 8개월 동안이나 철창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받아 얼굴엔 핏기 하나 없었지만 일제 치하 법정에서 이토록 당당하게 독립을 부르짖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령 1호로 국내에 설치돼 임정의 지령을 전파하고, 구국자금을 모으는 일을 한 비밀 행정조직, ‘연통제’ 사건 관련자들이었습니다.
위에 든 예는 함경북도 연통제 조직 설립을 주도한 김인서(1894~1964)의 말이지만,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1920년 8월 4일부터 나흘간 계속된 공판에 나온 47명의 ‘피고’ 모두 한 목소리였습니다. 박상목은 이시바시(石橋) 판사가 독립을 원하느냐고 묻자 “독립은 조선사람 전체가 희망하는데 나라고 다르겠느냐”고 외쳤고, 정두현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의붓아버지(일본)에게 봉사하지만 어찌 친아버지(조선)를 간절히 생각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8월 22일자부터 31일자까지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연통제의 공판’이라는 제하의 7회 연재기사로 이 공판 내용을 상세히 소개합니다. 사실 동아일보가 판결문이나 공판기(公判記)를 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창간 직후인 1920년 4월 6일자부터 3·1만세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예심재판을 다룬 ‘47인 예심결정서’를 8회 연재해 3·1운동의 주체와 경과 등 진상을 알렸고, 강우규 의사 공판기, 대한청년외교단·대한애국부인단 공판 방청 속기록 연속기사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처럼 일제에 항거한 쾌거를 지면을 아끼지 않고 보도한 것은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조선 민중에게 독립에의 의지를 고취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공개된 판결문이나 공판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는 데 그들도 막기 어려웠을 겁니다.
결사단지대(決死斷指隊)를 조직해 독립운동의 의지를 벼렸던 이규철이 연통제 공판에서 보여준 결기는 비장합니다. 그는 앞으로 나와 손을 펴 보이라는 판사의 말에 주먹을 단단히 쥐며 “볼 필요 없다. 정 보고 싶으면 (네가) 내려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손가락을 자른 건 명예를 얻으려는 수단 아니냐는 속물적 질문에는 “끊은 손가락을 항상 보면서 결의를 다졌다”고 대응하고는 “강도의 무리에게 잡혀온 나에겐 죄가 없다”고 일갈합니다.
신도(新藤) 검사의 구형 후 판사는 피고들에게 ‘이익이 되는 말’이 있거든 진술하라고 합니다. 최후진술의 기회를 준 거죠. 그러자 윤태선은 “일본이 강탈한 조선을 도로 찾자고 하는 게 무슨 죄냐”고 따졌고, 최종일은 “삼천리강토가 다 유치장이요, 감옥인데 나간다 한들 무슨 자유와 행복이 있겠느냐”고 꾸짖습니다. 이어 “2000만 조선 사람을 다 잡아다 죄를 줘라”, “중죄를 준다고 독립운동을 안 할 줄 아느냐, 누르면 누를수록 간절히 독립을 요구한다” 등의 성토가 계속되자 판사는 서둘러 폐정을 선언하고 쫓기듯 뛰어 들어가고 맙니다.
동아일보는 연통제 공판기 7회를 연재하면서 21개의 작은 제목을 붙였습니다. ‘연통제는 조헌(朝憲·조정의 법규) 문란’이라는 검사 발언 외에 대부분은 ‘일본의 정책은 착오’, ‘독립은 자연히 될 것’, ‘독립을 간절히 원하나 자격 없음을 한탄’ 등 피고들의 주장으로 채웠습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聯通制(연통제)의 公判(공판)(一·일)
八月(팔월) 四日(사일)로 七日(칠일)까지 四日間(사일간)
咸興地方法院 淸津支廳(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온 세상 사람의 이목을 놀내이고 더욱히 당국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함경북도의 지식계급으로 조직한 조선독립운동의 중대한 비밀결사인 련통제(聯通制·연통제)가 발각이 되야 오래동안 함흥디방법원 청진지청(咸興地方法院 淸津支廳·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예심 중이더니 지난 칠월 칠일에 예심이 결뎡되야 피고 사십칠인은 모다 정치범으로 결뎡이 되야 동 지텽의 공판에 붓치었섯는대 지난 사일부터 칠일까지 나흘 동안을 계속하야 이 중대한 사건의 뎨일회 공판은 동 지텽 뎨일회 법뎡에서 열니엇는대 사건도 중대하거니와 피고도 사십칠인 다수한 사건임으로 동 공판의 속긔를 발표하야 일반 독자에게 보코자 하는 바이라.
同道(동도) 定平郡(정평군) 金麟瑞(김인서)(二七·이칠)
咸北(함북) 鏡城郡(경성군) 李相鎬(이상호)(五○·오공)
同道(동도) 同郡(동군) 盧春燮(노춘섭)(四三·삼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宋權燮(송권섭)(三八·삼팔)
同道(동도) 同郡(동군) 全在一(전재일)(四六·사육)
同道(동도) 同郡(동군) 鄭斗賢(정두현)(四六·사육)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雲赫(이운혁)(二六·이육)
同道(동도) 同郡(동군) 金東湜(김동식)(二九·이구)
同道(동도) 同郡(동군) 張昌逸(장창일)(二五·이오)
同道(동도) 同郡(동군) 崔鵬南(최붕남)(四○·사공)
同道(동도) 同郡(동군) 朴斗煥(박두환)(三七·삼칠)
同道(동도) 同郡(동군) 尹秉球(윤병구)(二七·이칠)
同道(동도) 同郡(동군) 崔秉學(최병학)(四四·사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崔衡郁(최형욱)(二七·이칠)
同道(동도) 同郡(동군) 崔學南(최학남)(二四·이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朴仁壽(박인수)(五四·오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嚴日峯(엄일봉)(二七·이칠)
同道(동도) 同郡(동군) 崔宗一(최종일)(三二·삼이)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熙馥(이희복)(四五·사오)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致遠(이치원)(二八·이팔)
同道(동도) 同郡(동군) 姜鶴秉(강학병)(二四·이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玄昌黙(현창묵)(三六·삼육)
同道(동도) 同郡(동군) 林正發(임정발)(三○·삼공)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重湖(이중호)(三四·삼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張天錫(장천석)(四七·사칠)
同道(동도) 同郡(동군) 崔昌岳(최창악)(三二·삼이)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庸憲(이용헌)(三一·삼일)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庸春(이용춘)(三四·삼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嚴春燮(엄춘섭)(三八·삼팔)
同道(동도) 同郡(동군) 朴大郁(박대욱)(二八·이팔)
同道(동도) 同郡(동군) 金秉奎(김병규)(三四·삼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嚴基重(엄기중)(二六·이육)
同道(동도) 鍾城郡(종성군) 李永順(이영순)(三八·삼팔)
同道(동도) 鏡城郡(경성군) 石麟濟(석인제)(二八·이팔)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揆哲(이규철)(二七·이칠)
京畿道(경기도) 京城府(경성부) 尹台善(윤태선)(四六·사육)
咸北(함북) 鏡城郡(경성군) 金河經(김하경)(三○·삼공)
同道(동도) 同郡(동군) 金龍洛(김용락)(三五·삼오)
同道(동도) 同郡(동군) 鄭在鎬(정재호)(三四·삼사)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炳夏(이병하)(四一·사일)
同道(동도) 同郡(동군) 宋玧燮(송윤섭)(三○·삼공)
同道(동도) 同郡(동군) 姜尙鎬(강상호)(四二·사이)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在和(이재화)(四九·사구)
同道(동도) 同郡(동군) 石麟旭(석인욱)(二五·이오)
平南(평남) 成川郡(성천군) 朴相穆(박상목)(四三·사삼)
咸北(함북) 鏡城郡(경성군) 李南栽(이남재)(四○·사공)
咸北(함북) 會寜郡(회령군) 姜俊奎(강준규)(六八·육팔)
同道(동도) 同郡(동군) 李忠馥(이충복)(二五·이오)
同道(동도) 同郡(동군) 洪鍾一(홍종일)(二五·이오)
함경북도의 지식계급을 망라하야 조직한 함북 련통제(聯通制·연통제) 사건 사십칠인의 뎨일회 공판은 금월 사일 오젼 아홉시부터 함흥디방법원 청진지청(咸興地方法院 淸津支廳·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제일호 법뎡에서 개뎡되엿는대 뎡각 전에 피고 사십칠인은 간수와 순사에게 호위되야 법뎡으로 드러오는대 칠팔삭 동안이나 텰장 아리에서 신음한 까닭으로 얼골에는 혈색이 하나도 업시 하얏케 세이엿고 그 중에 백발이 성성한 로인이 잇는 것은 한층 더 사람의 비회를 자아내인다.
방텽인은 멀니 회녕(會寧·회령) 경성(鏡城·경성) 등디에서 온 사람이 무려 사오백 명에 달하얏는대 법뎡이 협착하야 피고들만 간신히 드러가고 간수와 순사가 법뎡 문 밧게서 경위를 엄중히 함으로 방텽인은 드러갈 생의도 못하고 법뎡 밧게 서서 피고의 얼골이나 볼가 하야 고개를 기웃기웃할 뿐이다.
뎡각보다 조금 늣게 석교 재판장(石橋 裁判長·석교 재판장) 쳔원(淺原·천원) 길(吉·길) 량 배석판사와 신등(新藤·신등) 검사, 서긔, 통역생이 차례로 착석하고 석교 재판댱이 개뎡을 선언하니 법뎡 안은 죽은 듯이 고요한 중 순서를 따라서 피고의 주소 직업 년령 씨명을 조사하는대 년령과 주소에 만흔 착오가 잇서 문부의 정리치 못한 뎜이 탈로되얏스며 한 시간 동안이나 조사를 맛치고 신등 검사는 이러서서 침착한 태도로 본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찰한 후 경찰서 검사국 예심뎡 심문과 기타 증거에 의하야 범죄 증거가 충분함으로써 공소를 뎨기하는 것이니 심리하기를 바란다 하고 안즈매 재판댱은 이로부터 사실을 심리할 터인 즉 일반 피고는 첫재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이 가로맛하 대답하지 말 일, 둘재 대답하는 말은 간단 명료하야 뭇지 아니하는 일까지 장황히 진술하지 말 일, 셋재 사실은 경찰서 검사국과 예심뎡에서 임의 취조한 것이니 이번 심문에 공연히 사실을 부인하야서 심문 상의 수속이 만히 걸니게 하지 말 일, 등의 셰 가지의 조건을 주의식힌 후 먼저 김인서(金麟瑞·김인서)부터 심문을 시작하얏다.
『朝鮮(조선)은 朝鮮人(조선인)의 朝鮮(조선)』
조션은 곳 조션인의 조션이니
조션인이 통치함이 당연한 일
金麟瑞(김인서)
간도 등디에서 조선독립 운동을 한 일이 잇는가.
업소.
조선독립운동을 하려 하얏느냐.
네-. 이번 사건은 조선독립을 도모한 것이요.
조선독립은 엇더한 의미의 독립인가.
물론 일본의 통치권을 버서나서 조선 사람의 손으로 통치하자는 것이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잇섯나.
일한 병합 당시부터이요.
엇지하야 그런 생각을 두엇나.
네-. 조선은 조선 사람의 조선이닛가, 조선 사람이 통치하여야 하갯소. 보시요. 일본의 통치 아래 잇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앗스니 무슨 행복이 잇갯소. 우리는 우리의 행복스러운 생활을 위하야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요.
작년 구월 상순경에 서울 사는 명제세(明濟世·명제세)에게서 상해 가정부의 련통제 즉 첫재 군자금으로 긔부금을 모집할 일, 둘재 군사상의 경험 잇는 자를 조사 통지할 일, 셋재 독립시위운동을 행할 일, 넷재 조선인 각 관텽 군대의 상황을 조사 통지할 일, 다섯재 병긔 탄약에 관한 상황을 통지할 일, 여섯재 구국금(救國金·구국금)을 모집할 일, 일곱재 시위운동 때문에 피히된 상왕을 조사 보고할 일 등의 일을 긔재한 목록견서(目錄見書·목록견서) 한 장을 우편으로 바든 일이 잇느냐.
녜-. 밧은 일이 잇소.
피고는 회녕 야소교회(會寧 耶蘇敎會·회령 야소교회)에서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권한이 잇슴을 리용하야 각 사람에게 그 문서를 보히엇는가.
아니요. 나는 서긔로 잇섯스니 무슨 지휘의 권리가 잇겟소.
언제부터 조선독립 운동을 하려 하얏느냐.
이 련통제를 보고 독립운동을 하려 하얏소.
명제세는 그 젼부터 알앗느냐.
아지 못하는 사람이요.
아지 못하는 사람이 엇지 그갓치 중요한 서류를 보내이엇느냐.
그것은 내게로 온 것이 아니요. 교회 중으로 온 것을 내가 교회의 일을 보게 되엿슴으로 떼여 보앗소.
그 서류는 인쇄물인가.
아니오. 철필로 쓴 것이요.
판댱은 증거 제일호를 보이면서 이것이 그것인가.
아니요. 그것은 내용이 갓흔 것인대 등사한 것뿐이요.
이것을 보고 찬성하야 참가하얏느냐.
다- 찬성한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찬성하얏소.
엇더한 것을 찬성치 아니하얏느냐.
군사상에 관한 사건은 찬성치 아니하얏소.
웨.
우리에게는 젼쟁할 실력이 업슬뿐 아니라 잇다 하드래도 나라를 빼앗기든 일한병합 때에도 전쟁한 것이 아니닛가 나라를 차즐 때에도 전쟁하지 안코 차즈려 하얏소.
만일 할 수 업시 전쟁할 경우가 되면 엇지 하려나냐.
그것은 그때 가서 보와야 알 일이요.
만일 싸호게 되면 누구와 싸호려 하느냐.
물론 일본이지요.
이 서류 중 적(敵·적)이라 함은 누구를 가라침인가.
그것도 일본이지요.
이 련통제를 각처에 설치하려 하얏는가.
그럿소.
이 서류를 바다보고 회녕 사는 리남식(李南植·이남식)의 집에서 박원혁(朴元爀·박원혁) 박관훈(朴寬勳·박관훈)과 가치 모혀서 의론을 하얏는가.
그리하얏소.
무슨 일을 의론하얏는가.
실행방침을 의론하얏소.
즉 도(道·도)에 감독부(監督府·감독부), 군(郡·군)에 통감부(統監府·통감부), 면(面·면)에 사감부(司監府·사감부)를 설치하자는 것이냐.
그럿소.
그리하야 회녕 감독부 감독에 강준규(姜俊奎·강준규)를 추천하고 박원혁은 서긔로, 박관훈(朴寬勳·박관훈) 재무부원으로 임명하고 진홍진(陣鴻振·진홍진) 회녕 총감부 총감으로 추쳔하고 피고는 부총감이 되엿는가.
그리하얏소.
진홍진과 강준규는 회의석에 참예치 아니하얏는가.
네-. 그 자리에 업기로 추쳔만 하얏소.
그 후 승낙을 엇기 위하야 가서 말하얏나.
가서 말하얏소. 강쥰규에게는 박원혁이가 말하기로고, 진홍하진에게는 내가 가서 말하기로 하엿스나 차자갓다가 만나지 못하얏소.
언제쯤인가.
회의한 후 한 달쯤 지나서 차저갓섯소.
만나지 못하야 그만 두엇는가.
네-.
강쥰규는 엇더케 되엿느냐.
박원혁의 말에 승낙치 아니하드라 하옵듸다.
련통제 서류의 등사를 마치여 로츈섭(盧春燮·노춘섭)에게 주어 리상호로 하야곰 경성(鏡城·경성)에 그 긔관을 설치하려 하얏느냐.
로츈섭에게는 내가 쥰 것이 아니라 박원혁이가 주엇소.
언제 주엇는가.
내가 쥰 것이 아니닛가 모르겟소.
그 서류를 등사할 때에 로츈섭이는 오지 아니하얏느냐.
그럿소.
박원혁에게 줄 때에 로춘섭에게 젼하려 하얏는가.
아니요. 그저 경성(鏡城·경성)으로 보내라 하얏소.
경성(鏡城·경성)으로 보낸 후에 그 결과가 엇지 되엿는지 알앗느냐.
박원혁에게서 경성(鏡城·경성)에서도 조직한다는 말을 들엇소.
엇지 한다는 내용은 몰낫는가.
그 내용은 몰낫소.
상해 가정부에 이 긔관의 조직이 완성되엿다고 통지하얏는가.
완성하엿다고 한 것이 아니라 방금 조직 중이라고 통지하얏소.
엇더케 통지하얏는가.
내가 경성(鏡城·경성) 가서 명제세(明濟世·명제세)를 만나서 전하얏소.
『錯誤(착오)된 日本(일본)의 政策(정책)』
조선인의 문화와 력사를
무시하고 억지로 동화만
朴元赫(박원혁)
그 다음에는 박원혁을 심문하기 시작하얏다.
피고는 이젼부터 조선독립을 희망하얏는가.
녜-. 희망하얏소.
웨-.
일한 량국이 병합한 후 일본의 정책은 우리의 문화와 력사를 무시하고 무리한 동화(同化·동화)를 강제하야 우리의 문화를 박멸하려 하니 엇지 독립을 열망치 아니하겟소.
독립의 의의(意義·의의)와 그 하려하는 방법은 김린서의 말과 가튼가.
그럿소.
김린서의 말과 가치 회녕 리남식의 집에서 련통제에 관하야 회의한 일이 잇는가.
그리하얏소.
련통제 서류를 로츈섭에게 주어서 경성(鏡城·경성) 리상호(李相鎬·이상호)에게 전하고 경성(鏡城·경성)에도 그 긔관을 설치하랴 하얏는가.
그리하얏소.
로츈섭이는 어대서 만낫는가.
회녕 박관훈(朴寬勳·박관훈)의 집에서 만낫섯소.
무슨 말을 하얏는가.
그 서류를 리상호 젼재일(全在一·전재일)에게 전하라 하얏소.
그 내용을 말하고 찬성을 어덧는가.
아니요. 그저 독립에 관한 서류라 하고 리상호 전재일에게 전하라 하얏소.
웨 자세한 말을 아니하얏는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업기로 그리하얏소.
각 긔관을 설치할 것과 상해 가정부에 통지할 것은 김린서의 말과 가튼가.
그럿소.
盧春燮(노춘섭)
그 다음에는 로츈섭을 심문하게 되엿다.
박원혁의 말과 가치 박관환의 집에서 박원혁에게 련통제 서류를 밧앗는가.
네-. 바닷소.
박원혁이가 무슨 말을 하든고.
독립에 관□ 서류□ 하□서 리상호 전재일에게 전하□ 하기□ 너무 깃버서 전하□□.
예심□에서 무슨 서류인지 모르고 전하얏□ 하얏는데?
예심뎡에서는 그럿케 말하얏지마는 지금 말이 사실이니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오.
피고는 이젼부터 조선독립을 희망하얏는가.
희망하다 뿐이요.
오전 열두 시가 되매 재판댱은 한 시간 동안 휴게를 선언한 후 오후 한 시에 다시 개뎡하고
李相鎬(이상호)
박원혁과 그 전부터 알앗든가.
몰낫섯소.
간도 방면에서 언졔 조선독립 운동을 하얏느냐.
작년 음력 이월 십일일부터 룡정촌(龍井村·용정촌)에서 삼월 말일까지 독립운동을 하얏소.
룡정촌 무슨 일을 하얏느냐.
만세 부른 일이요.
그리 재류 금지를 당하얏는가.
그럿소.
그가치 독립운동을 하든 터임으 박원혁이가 그런 줄 알고 련통졔 서류를 보냇느냐.
아마 그런 줄로 아오.
언제 알앗는가.
작년 음력 칠월경이오.
련통제를 보□ 곳 독립운동할 생각이 낫든가.
그럿□.
엇지 하여 독립하려 하나뇨.
걸핏하면 우리 조선인 안령질서를 문□하느니 엇지 하느니 하지마는 실상 일본인이 우리 안령질서를 문란케 하야 우리는 안령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야 독립하□ 하오.
엇지하야 일본인이 안령질서를 문란□ 하는가.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아섯슴으로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찻기 위하야 운□하면 우리를 잡아 가두고 야단치지 아니하오. 만일 합병치 아니하얏드면 우리는 이러한 운동을 □ 리치도 업고 옥에도 가치지 아니하고 평안히 잇슬 것이 아니오.
조선독립의 뜻은 일본의 통치에서 버서나자는 것이지?
그럿소.
로춘섭에게서 회령 박원혁의 보내는 련통제에 관한 서류를 바닷는가.
네. 바닷소.
바다서 엇지 하얏는가.
바다보□ 곳 그 긔관을 경성(鏡城·경성)에 설치하려 하얏소.
그 긔관을 설치하기 위하야 경성읍 내 승암동 송완섭(鏡城邑 勝庵洞 宋玩燮·경성읍 승암동 송완섭)의 집에서 피고와 젼재일 김동식(金東湜·김동식) 정두현(鄭斗賢·정두현) 리운혁(李雲赫·이운혁) 장창일(張昌逸·장창일) 송관섭(宋瓘燮·송관섭) 송윤섭 등 여러 사람이 모히어서 일하얏는가.
네-. 회의하얏소. 그러나 리운혁이는 잇섯는지 엇지 하얏는지 모르겟소.
회의 시긔가 언제이든가.
작년 음력 칠월경이오.
그리하야 경성(鏡城·경성)에 총감부(總監府·총감부)를, 각 면에 사감부(司監府·사감부)를 설치하려 작뎡하얏느냐.
네-.
임원은 피고가 경성(鏡城·경성) 총감부 총감으로, 전재일이가 부총감으로, 송윤섭은 □무가 되고, 정두현은 경성군 오촌면 사감(梧村面 司監·오촌면 사감)으로, 송관섭(宋灌燮·송관섭)은 재무(財務·재무)로, 최붕남(崔鵬南·최붕남)은 동군 주을면(朱乙面·주을면) 사감으로, 최병학(崔秉學·최병학)은 동군 주북면 사감으로, 석린욱(石麟郁·석인욱)은 동군 라남면(羅南面·나남면) 사감으로, 리영순(李永順·이영순)은 동군 룡성면(龍城面·용성면) 사감으로, 리희복(李熙馥·이희복)은 동군 어랑면(漁郞面·어랑면) 사감으로 결뎡하얏느냐.
네-. 그리하얏소. 그러나 각 면 사감은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업섯기로 추쳔만 하얏소.
그 자리에 업섯기로 사감이 되라고 권유하려고 사람을 보내엿든냐.
네-. 보내엿소.
누구를 보내엿나?
룡성면에 송관섭을, 주을온면(朱乙溫面·주을온면) 주북면(朱北面·주북면) 주남면(朱南面·주남면) 어랑면(漁郞面·어랑면)에 김동식을 보내엿소.
그 다음 리운혁이가 이 회의에 참가 찬성한 여부에 대하여 한참 문답이 잇슨 후 잇섯는지 업섯는지 아지 못하노라 주장하고
주북면 주남면 사감이 임명된 일을 들엇는가.
못드럿소.
『게속』
연통제의 공판(1)
8월 4~7일 4일간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온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하며 이목을 끌었고, 특히 당국자의 간담을 서늘케 한 함경북도 지식계급으로 조직된, 조선독립운동의 중대한 비밀결사인 연통제가 발각돼 오래 동안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예심 중이었는데, 지난 7월 7일에야 끝난 예심에서 피고 47명은 모두 정치범으로 결정돼 동 지청의 공판에 붙여졌다.
이번 달 4일부터 7일까지 나흘 동안 계속된 이 중대 사건의 제1회 공판은 청진지청 제1호 법정에서 열렸는데 사건도 중대하거니와 피고도 47명이나 되므로, 이 공판의 속기를 발표해 일반 독자에게 알리고자 한다.
〃 정평군 김인서(27)
함북 경성군 이상호(50)
〃 〃 노춘섭(34)
〃 〃 송관섭(38)
〃 〃 전재일(46)
〃 〃 정두현(46)
〃 〃 이운혁(26)
〃 〃 김동식(29)
〃 〃 장창일(25)
〃 〃 최붕남(40)
〃 〃 박두환(37)
〃 〃 윤병구(27)
〃 〃 최병학(44)
〃 〃 최형욱(27)
〃 〃 최학남(24)
〃 〃 박인수(54)
〃 〃 엄일봉(27)
〃 〃 최종일(32)
〃 〃 이희복(45)
〃 〃 이치원(28)
〃 〃 강학병(24)
〃 〃 현창묵(36)
〃 〃 임정발(30)
〃 〃 이중호(34)
〃 〃 장천석(47)
〃 〃 최창악(32)
〃 〃 이용헌(31)
〃 〃 이용춘(34)
〃 〃 엄춘섭(38)
〃 〃 박대욱(28)
〃 〃 김병규(34)
〃 〃 엄기중(26)
〃 종성군 이영순(38)
〃 경성군 석인제(28)
〃 〃 이규철(27)
경기도 경성부 윤태선(46)
함북 경성군 김하경(30)
〃 〃 김용락(35)
〃 〃 정재호(34)
〃 〃 이병하(41)
〃 〃 송윤섭(30)
〃 〃 강상호(42)
〃 〃 이재화(49)
〃 〃 석인욱(25)
평남 성천군 박상목(43)
함북 경성군 이남재(40)
함북 회령군 강준규(68)
〃 〃 이충복(25)
〃 〃 홍종일(25)
함경북도의 지식계급을 망라해 조직한 함북 연통제 사건 관련 47명의 제1회 공판은 이번 달 4일 오전 9시부터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 제1호 법정에서 개정됐다. 정각 전에 피고 47명은 간수와 순사에게 호위돼 법정으로 들어오는데 7, 8개월 동안이나 철창 아래에서 신음한 까닭에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이 하얗게 셌고, 그 중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있어 한층 더 보는 이의 비애를 자아낸다.
방청인은 멀리 회령, 경성(鏡城) 등지에서 온 사람 등 무려 400, 500명에 달했다. 하지만 법정이 좁아 피고들만 간신히 들어가고 간수와 순사가 문 밖에서 엄중히 지키는 바람에 방청인은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법정 밖에 서서 피고들의 얼굴이나 볼 수 있을까 해 고개를 기웃기웃할 뿐이다.
정각보다 좀 늦게 이시바시 재판장, 아사하라·요시 두 배석판사, 신도 검사와 서기, 통역이 차례로 자리에 앉은 뒤 이시바시 재판장이 개정을 선언하니 법정 안은 죽은 듯 고요했다. 순서에 따라 각 피고의 주소, 직업, 나이, 성명을 조사하는데 연령과 주소에 착오가 많아 문서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점이 드러나 조사를 마치는 데 1시간 동안이나 걸렸다. 신도 검사는 일어서서 침착한 태도로 이번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살펴본 뒤 “경찰서 검사국, 예심 법정 심문과 기타 증거에 의해 피고의 범죄 증거가 충분하므로 공소를 제기하는 것이니 심리를 바란다”고 얘기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어 재판장은 사실을 심리할 것인데, 피고들은 첫째,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채 대답하지 말 것, 둘째, 대답은 간단명료하게 해 묻지 않은 것까지 장황하게 진술하지 말 것, 셋째 이미 경찰서 검사국과 예심 법정에서 취조한 것이 있는데, 이번 심문에서 공연히 사실을 부인해 번거롭게 만들지 말 것 등 세 가지 주의를 준 뒤 김인서부터 심문을 시작했다.
“조선은 조선인의 조선”
조선은 곧 조선인의 조선이니
조선인이 통치함은 당연한 일
김인서
- 간도 등지에서 조선 독립운동을 한 일이 있는가.
“없소.”
- 조선 독립운동을 하려 했느냐.
“그렇다. 이번 사건은 조선 독립을 도모한 것이다.”
- 조선 독립은 어떠한 의미의 독립인가.
“물론 일본의 통치권을 벗어나 조선 사람의 손으로 통치하자는 것이다.”
-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나.
“일한 병합 당시부터다.”
- 어찌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조선은 조선 사람의 조선이니까 조선 사람이 통치해야 하겠소. 보시오. 일본의 통치 아래 있는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으니 우리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소. 우리는 우리의 행복스러운 생활을 위해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오.”
- 작년 9월 상순경 서울에 사는 명제세로부터 상해임시정부의 연통제, 즉 첫째, 군자금용으로 기부금을 모집할 것, 둘째, 군사상 경험 있는 사람을 조사해 통지할 것, 셋째, 독립 시위운동을 할 것, 넷째, 조선인 각 관청 군대의 상황을 조사해 통지할 것, 다섯째, 병기 탄약에 관한 상황을 통지할 것, 여섯째, 구국자금을 모을 것, 일곱째, 시위운동 때문에 피해 입을 상황을 조사해 보고할 것 등의 일을 기재한 목록 문서를 받은 일이 있느냐.
“그렇다. 받은 일 있다.”
- 피고는 회령 예수교회에서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권한이 있음을 이용해 각 사람에게 그 문서를 보여줬는가.
“아니다. 나는 서기에 불과했는데, 무슨 지휘권이 있었겠느냐.”
- 언제부터 조선 독립운동을 하려 했느냐.
“이 연통제를 보고 독립운동을 하려 했다.”
- 명제세라는 사람은 그 전부터 알았느냐.
“모르는 사람이오.”
- 알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그 같이 중요한 서류를 보냈느냐.
“그것은 나에게 온 것이 아니다. 교회로 온 것을 내가 교회 일을 보게 됐으므로 떼어 본 것이다.”
- 그 서류는 인쇄물이냐.
“아니다. 철필로 쓴 것이다.”
재판장은 증거 제1호를 보이면서 “이것이 그것인가?”
“아니다. 그것은 내용은 같지만 등사한 것이다.”
- 이것을 보고 찬성해 참가했느냐.
“다 찬성한 것은 아니고, 일부분만 찬성했다.”
- 어떤 것을 찬성하지 않았느냐.
“군사상에 관한 것은 찬성하지 않았다.”
- 왜?
“우리에게는 전쟁을 할 실력이 없을 뿐 아니라, 만약 있다 하더라도 나라를 빼앗긴 일한 병합 때에도 전쟁한 것이 아니니까 나라를 찾을 때에도 전쟁하지 않고 찾으려 했다.”
- 만일 할 수 없이 전쟁할 경우가 되면 어찌 하려느냐.
“그것은 그때 가봐야 알 일이다.”
- 만일 싸우게 되면 누구와 싸우려 하느냐.
“물론 일본이다.”
- 이 서류에서 ‘적(敵)’이라 함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도 일본이다.”
- 이 연통제를 각처에 설치하려 했는가.
“그렇다.”
- 이 서류를 받아보고 회령에 사는 이남식의 집에서 박원혁, 박관훈과 같이 모여 의논을 했는가.
“그리 했다.”
- 무슨 일을 의논했는가.
“실행 방침을 의논했다.”
- 즉 도(道)에 감독부, 군(郡)에 통감부, 면(面)에 사감부를 설치하자는 것이냐.
“그렇다.”
- 그래서 회령 감독부 감독에 강준규를 추천하고 박원혁은 서기로, 박관훈은 재무부원으로 임명하고, 진홍진을 회령 총감부 총감으로 추천하고, 피고는 부총감이 됐는가.
“그리 했다.”
- 진홍진과 강준규는 회의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그 자리에 없어서 추천만 했다.”
- 그후 승낙을 얻기 위해 가서 말했나.
“가서 말했다. 강준규에게는 박원혁이, 진홍진에게는 내가 가서 말하기로 했는데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 언제쯤인가.
“회의한 뒤 한 달쯤 지나서 찾아갔다.”
- 만나지 못해 그만 두었나.
“그렇다.”
- 강준규는 어떻게 됐는가.
“박원혁의 말에 승낙하지 않더라 합디다.”
- 연통제 서류를 등사해 노춘섭에게 줘 이상호를 시켜 경성(鏡城)에 그 기관을 설치하려 했느냐.
“노춘섭에게는 내가 준 것이 아니라 박원혁이 줬다.”
- 언제 줬는가.
“내가 준 것이 아니라서 모르겠다.”
- 그 서류를 등사할 때 노춘섭은 오지 않았나.
“그렇다.”
- 박원혁에게 줄 때 노춘섭에게 전하라고 했는가.
“아니다. 그저 경성(鏡城)으로 보내라고만 했다.”
- 경성으로 보낸 뒤 그 결과가 어찌 됐는지 알았는가.
“박원혁으로부터 경성에서도 조직한다는 말을 들었다.”
- 어찌 한다는 내용은 몰랐나.
“그 내용은 몰랐다.”
- 상해임시정부에 이 기관의 조직이 완성됐다고 통지했는가.
“완성했다고 한 것이 아니라 방금 조직 중이라고 통지했다.”
- 어떻게 통지했는가.
“내가 경성에 가 명제세를 만나 전했다.”
“일본의 정책은 착오다!”
조선인의 문화와 역사를
무시하고 억지로 동화만
박원혁
재판장은 그 다음으로 박원혁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 피고는 이전부터 조선 독립을 희망했는가.
“그렇다. 희망했다.”
- 왜?
“일한 양국이 병합한 뒤 일본의 정책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동화를 강제해 우리의 문화를 박멸하려 했으니 어찌 독립을 열망하지 않겠는가.”
- 독립의 의의와 그 하려는 방법은 김인서의 말과 같은가.
“그렇다.”
- 김인서의 말과 같이 회령 이남식의 집에서 연통제에 관해 회의한 일이 있는가.
“그리 했다.”
- 연통제 서류를 노춘섭에게 줘 경성 이상호에게 전하고, 경성에도 그 기관을 설치하려 했는가.
“그리 했다.”
- 노춘섭은 어디서 만났나.
“회령 박관훈의 집에서 만났다.”
- 무슨 말을 했는가.
“그 서류를 이상호, 전재일에게 전하라 했다.”
- 그렇게 말하고 찬성을 얻었는가.
“아니다. 그저 독립에 관한 서류라 하고 이상호, 전재일에게 전하라 했다.”
- 왜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는가.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어서 그리 했다.”
- 각 기관을 설치할 것, 상해임시정부에 통지할 것은 김인서의 진술과 같은가.
“그렇다.”
노춘섭
그 다음에는 노춘섭을 심문하게 됐다.
- 박원혁의 말과 같이 박관훈의 집에서 박원혁에게 연통제 서류를 받았는가.
“그렇다. 받았다.”
- 박원혁은 무슨 말을 했나.
“독립에 관한 서류라 하면서 이상호 전재일에게 전하라고 하기에 너무 기뻐서 전했다.”
- 예심 법정에서는 무슨 서류인지 모르고 전했다고 했는데?
“예심에선 그렇게 말했지만, 지금 말이 사실이니 사실은 사실대로 말한다.”
- 피고는 전부터 조선 독립을 희망했는가.
“희망하다 뿐인가.”
낮 12시가 되자 재판장은 1시간 동안 휴정을 선언한 뒤 오후 1시 다시 개정했다.
이상호
- 박원혁과는 전부터 아는 사이였나.
“몰랐다.”
- 간도 방면에서 언제 조선 독립운동을 했는가.
“작년 음력 2월 11일부터 용정촌(龍井村)에서 3월 말일까지 독립운동을 했다.”
- 용정촌에서 무슨 일을 했나.
“만세를 불렀다.”
- 그래서 재류금지(거주제한 및 추방)를 당했는가.
“그렇다.”
- 그 같이 독립운동을 하던 터이므로 박원혁이 그런 줄을 알고 연통제 서류를 보낸 것이냐.
“아마 그런 줄로 안다.”
- 언제 알았는가.
“작년 음력 7월경이다.”
- 연통제를 보고 곧 독립운동을 할 생각이 들었느냐.
“그렇다.”
- 어찌 해서 독립하려 하느냐.
“(너희들은) 걸핏하면 우리 조선인이 안녕질서를 문란케 하느니, 어찌 하느니 하지만 실상은 일본인이 우리의 안녕질서를 어지럽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우리는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독립하려 한다.”
- 어찌해서 일본인이 안녕질서를 문란케 한다고 하나.
“일본이 빼앗은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면 우리를 잡아 가두고 야단치지 않느냐. 만약 강제로 합병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런 운동을 할 이치도 없고, 옥에도 같이지 않고 평안하게 있을 것 아니냐.”
- 조선 독립의 뜻을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자는 것인가.
“그렇다.”
- 노춘섭으로부터 회령 박원혁에게 보내는 연통제 관련 서류를 받았는가.
“그렇다. 받았다.”
- 받아서 어떻게 했나.
“받아보고 곧 그 기관을 경성에 설치하려 했다.”
- 그 기관을 설치하기 위해 경성읍 내 승암동 송완섭의 집에서 피고와 전재일, 김동식, 정두현, 이운혁, 장창일, 송관섭, 송윤섭 등 여러 사람이 모여 일했는가.
“그렇다. 회의를 했다. 그러나 이운혁은 있었는지 어찌 했는지 모르겠다.”
- 회의 시기가 언제인가.
“작년 음력 7월경이다.”
- 그렇게 해서 경성에 총감부를, 각 면에 사감부를 설치하려고 작정했는가.
“그렇다.”
- 임원은 피고가 경성 총감부 총감, 전재일이 부총감, 송윤섭은 □무가 되고, 정두현은 경성군 오촌면 사감, 송관섭은 재무, 최붕남은 동군 주을면 사감, 최병학은 동군 주북면 사감, 석인욱은 동군 나남면 사감, 이영순은 동군 용성면 사감, 이희복은 동군 어랑면 사감으로 결정했는가.
“그렇다. 그리 했다. 그러나 각 면의 사감은 그 사람들이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추천만 했다.”
- 그 자리에 없어 사감이 되라고 권유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는가.
“그렇다. 보냈다.”
- 누구를 보냈나.
“용성면에 송관섭을 보냈고, 주을온면 주북면 주남면 어랑면에 김동식을 보냈다.”
이후 이운혁이 이 회의에 참가해 찬성했는지 여부에 대해 한참 문답을 한 뒤 있었는지, 없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주장하고
- 주북면 주남면 사감이 임명된 일을 들었는가.
“듣지 못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