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원격 의료’ 속도 내는데 한국은 규제에 막혀 지지부진
해외 각국은 원격 의료를 산업전략 관점에서 적극 육성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영국은 이미 원격 의료를 허용했다. 이 국가들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원격 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中 원격 의료 가입자 10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3월 국가비상사태 선포 당시 “원격 의료가 그동안 믿을 수 없는 성과를 냈다”며 원격 의료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다. 미 보건당국은 원격 의료 역시 대면 진료와 동일한 수가를 책정하기로 했다. 이미 1990년대부터 원격 의료를 허용한 미국에서는 관련 산업이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원격 의료시장 점유율 1위인 플랫폼 업체 텔라닥은 올 1분기(1∼3월) 이용자가 204만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용자(106만 명)의 약 2배로 늘어난 것이다.
○ 해외는 뛰는데 한국은 제자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 1월 펴낸 ‘원격 의료 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37곳 중 칠레, 체코, 에스토니아, 스위스, 터키 등 5개국을 제외한 32개국이 원격 의료를 허용했다. 한국은 OECD 조사에 포함되지 않았다. 원격 의료가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내 원격 의료는 20년 가까이 정부의 시범 사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중소벤처기업부가 강원도를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 원격 의료 실증 사업이 가능해졌다. 특히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첫 실증 사업이라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환자가 전용 의료기기를 사용해 직접 측정한 혈압, 맥박을 전송하는 ‘원격 모니터링’만 순조로웠을 뿐 제대로 된 원격 진료는 이뤄지지 못했다. 사업에 참여할 동네 의원이 없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 탓에 우수한 정보통신기술(ICT)을 보유한 국내 원격 의료 기업들은 해외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제품을 개발했지만 국내 규제에 막혀 해외 환자만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달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삼성전자의 혈압 측정 애플리케이션(앱) ‘삼성 헬스 모니터’는 국내 사업화가 불투명한 상태다. 스마트 워치와 연동되는 이 앱을 이용하면 간편하게 혈압을 측정할 수 있다. 다만 데이터는 자가 건강관리에만 이용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상 원격 모니터링 관련 조항이 애매해 해당 데이터를 의사에게 보내거나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
김호경 kimhk@donga.com·강동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