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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고시원 등 개조해 임대료 착한 월세방으로

입력 | 2020-05-02 03:00:00

[공공임대주택 30년]<3>새로운 실험, 사회주택




서울 마포구 성산로에 위치한 국내 1호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인 ‘녹색친구들 성산’의 외부 전경. 1층은 사진관, 2~4층에 11가구가 살고 있다. 녹색친구들 제공

서울 강남구 대치동(삼성로)은 자타 공인 국내 최고 인기 주거지 가운데 하나다. 이곳 중심부인 포스코사거리와 대치사거리 가운데에 ‘대치포스코더¤’이 자리하고 있다. 지어진 지 15년이 넘었지만 이 아파트 168㎡짜리가 올해 초 24억7000만 원에 거래됐다. 전세금도 15억 원에 달한다. 웬만한 수입으로는 살아볼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 아파트와 길 하나 사이를 두고 40㎡ 크기의 방을 월 50만 원 정도만 내면 살 수 있는 곳이 있다. ‘앤스테이블 대치’라는 이름이 붙은 주거 및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선 복합건물로, 서울시가 땅을 제공하고 민간업체가 지어 운영하는 임대주택이다.

지난해 말 준공된 지상 6층 건물인데, 언뜻 보면 세련된 사무용 빌딩처럼 보인다. 지상 1층에 카페와 건물 입주자용 커뮤니티 공간, 2층에 공유형 사무공간, 4~6층에 주거공간이 있다. 주거시설은 원룸형(1인용) 4실과 투룸형(2인용) 8실 등 모두 20실이다.

주거공간이 배치된 4~6층에는 해당 층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10㎡ 남짓한 공유공간도 있다. 임대보증금은 4000만 원으로, 3000만 원까지 서울시가 무이자로 대출해준다. 입주자의 부담금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 5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이곳에 사는 이철빈 씨(26)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올해 1월 입주했다”며 “강남 한복판에서 이런 조건으로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 임대주택의 새로운 실험, 사회주택

국내 최고 인기 주거지역에 어떻게 이런 주택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비결은 서울시가 청년 주거 빈곤과 서민 주거난 해소를 목적으로 2015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택’에 있다. 사회주택은 서울시가 보유 토지나 빈집, 노후 고시원 등을 임대해 사회적기업 등 비영리단체에 건축비, 리모델링비 등을 지원한 뒤 운영까지 맡기는 임대주택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나 SH서울주택공사 등이 기획-개발-운영관리를 도맡는 공공임대주택과 민간이 소유권과 운영권을 모두 갖는 민영임대주택이 혼합된 성격이다. 소유권을 공공이 갖거나 민간이 갖더라도 공공임대주택에 준하는 수준의 규제를 한다. 입주자를 무주택자로, 임대료를 시세의 80% 수준으로 제한하는 식이다. 임대기간도 최장 30~40년에 달한다. 김종식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은 “사회주택은 공공과 민간으로 이원화된 임대주택 시장에서 중간 사다리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주택은 2010년대 접어들면서 대도시에서 임대주택용지를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민간이 보유한 토지나 주택을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주도해온 LH가 2010년 이후 부채 부담을 이유로 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줄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청년층 주거 빈곤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채준배 사회주택협회 조직국장은 “1980년대부터 사회주택의 초기 모델들이 존재했지만 2010년대 협동조합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회주택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사회주택을 주도하고 있다면 국토교통부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민간 영역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당초 ‘뉴스테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도입됐지만 지나치게 민간기업의 이익만 보장한다는 지적에 따라 2018년 이름을 바꾸고, 제도를 보완하는 진통을 겪었다. 결국 현 상황에서 민간영역을 이용한 공공임대주택은 사회주택이 대표 선수인 셈이다.

사회주택은 사업방식에 따라 크게 △토지임대형 △리모델링형 △빈집살리기형 등이 있다. 토지임대형은 서울시가 토지를 확보한 뒤 비영리단체에 개발과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다. 앤스테이블 대치가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시가 대주주인 ‘서울사회주택리츠’가 땅을 확보한 뒤 민간업체 ‘앤스페이스’에 개발 및 운영을 맡겼다. 서울 마포구 성산로6길에 위치한 ‘녹색친구들 성산’은 국내 1호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으로, 지상 4층 높이에 원룸-투룸-복층형 주택 11실이 들어서 있다. 임대료는 보증금 5300만~1억 3000만 원에 매월 9만 7000여 원부터 39만 원 정도만 내면 된다. 이곳에 1년 전 입주한 이준호 씨(30)는 “직전까지 반지하에 살다가 7대 1의 경쟁을 뚫고 이곳에 입주했다”고 감격해했다. 그는 이곳 1층 커뮤니티공간을 빌려 낮에는 자신의 사진관으로 운영하며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일과 삶의 균형)’을 만끽하고 있다.

리모델링형은 지어진 지 15년 이상된 고시원 독서실 등 비주거용 건축물을 비영리단체가 임대한 뒤 주거용에 맞게 내부시설을 고친 뒤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때 임대 및 리모델링비용을 서울시 등이 지원한다. 고시촌 밀집지역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셰어어스’가 대표적이다. 44개 쪽방으로 이뤄져있던 고시원을 19개로 줄이고, 공유부엌, 커뮤니티룸, 거실, 발코니, 샤워실 등을 추가로 배치했다.

빈집살리기형은 특별자치시장과 특별자치도지사, 지방자치단체장이 거주나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는 주택을 비영리단체가 임대한 뒤 개보수해 임대주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 마포구를 비롯해 인구 감소와 주거시설 노후화, 빈집 증가 등으로 고민 중인 전북 전주시, 충북 진천시 등에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주택사업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토교통부가 LH가 조성하고 있는 3기 신도시 등에 사회주택단지를 조성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또 인천, 대전, 부산, 경기 평택시 등에서도 사회주택 공급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최정민 국토부 민간임대정책과장은 “민간의 영역을 활용한 임대주택은 공공 부문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지역밀착형 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며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 필요하나 규정 등 제도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사회주택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도입 초기인 만큼 보완할 과제가 적잖다고 입을 모았다. 천현숙 SH도시연구원장은 “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 2.0’이 계획대로 완성돼 장기공공임대주택이 240만 채가량 들어서면 저소득 취약계층의 사회안전망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임대주택 수요자 800만 가구 중 공공부문에서 주거문제를 책임져줘야 할 계층이 최소 400만 가구 정도로 추산된다”며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는 민간을 활용한 임대주택을 추가로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주택의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규정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최경호 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관련 개정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국회가 정상화돼 이 법안을 통과시켜 주고, 이를 근거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자금 지원 기준이 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택 도입 초기인 만큼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원석 서울연구원 연구기획실장은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을 통합해 ‘공적주택’으로 묶고, 동일한 수준으로 지원하되 LH, SH, 사회주택 운영 민간업체가 서로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앤스테이블 대치를 운영하는 앤스페이스의 정수현 대표는 “사회주택은 초기에 운영업체가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며 “영국 등 해외에서처럼 운영업체에 토지우선개발권 부여 등과 같은 좀 더 과감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회주택 참여 업체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으로 영세해 부실화 우려가 큰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다. 부동산 개발업체 ‘글로벌아이앤디’의 오정원 사장은 “이미 일부 업체는 부실화 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전문적인 지도 관리가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