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로 드러난 이천화재 참사 임시소방시설 설치 대상이지만 처벌조항 없어 대부분 부실 설치 소방당국도 “필수점검대상 아니다”… 작년 4월 착공후 한번도 점검 안해 “피난유도등-경보장치만 있었어도 ‘골든타임’ 확보 희생자 줄었을 것”
헌화 정세균 국무총리가 3일 오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합동 분향소를 방문해 헌화했다. 이천=뉴시스
○ 피난유도등도 경보기도 없이
가까스로 대피한 현장 관계자들은 불이 난 직후 전기가 끊겨 조명이 꺼진 데다 검은 연기가 건물을 뒤덮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건물 바깥에 있었던 하청업체 직원 A 씨는 “동료를 구하려고 지하 2층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어두컴컴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한 화재 감식 전문가도 “피난유도등만 있었어도 희생자가 훨씬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비상경보장치는 경보음을 울렸을 때 작업장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를 내야 한다. 하지만 참사 현장엔 비상경보장치가 없었고, 비상벨 설치를 위한 전기선만 확인됐다고 한다. 이 때문에 지상 근로자들은 연기가 차 오른 뒤에야 대피를 시도하며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소방 관계자는 “지상 1∼4층 희생자 상당수가 작업 공간에서 그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보음이 없어 적절한 대피 안내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임시소방시설 없어도 처벌 안 받아
소화기도 기준보다 적은 숫자만 비치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청 세부 기준에 따르면 소화기는 작업장 층마다 기본 2개 이상 구비해야 한다. 우레탄폼 등 가연성 물질을 취급하거나 용접 등 불꽃이 발생하는 작업을 할 땐 대형 소화기를 포함해 5개 이상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 관계자는 “참사 현장의 지하 2층에서 발견한 소화기는 1개뿐이었다”고 전했다. 취재팀은 시공사 측에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이 법은 현재 ‘반쪽짜리’다.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시공사를 처벌할 수 없다. 관할 소방서장이 설치 명령을 내리고, 이를 어긴 사실이 적발됐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다. 한데 소방 당국은 지난해 4월 물류센터 착공 이후 한 번도 안전 점검에 나서지 않았다. 완공 전 건물은 소방당국의 필수 점검 대상이 아니고, 산업안전보건공단 소관이라는 이유에서다. 임시소방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시공자에게 과태료 300만 원을 물리는 소방시설법 개정안은 2018년 9월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천=이소연 always99@donga.com·박종민 / 조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