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1년 맞아 신작 창극 ‘춘향’ 내놓는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소리 할 때는 긴장이 덜 되는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이렇게 떨린다”며 촬영에 앞서 판소리 한 대목을 뽑았다. 그는 대극장에서도 객석 제일 뒤편까지 꽂히는 맑은 소리를 지녔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소리, 소리, 소리…. 유수정 국립창극단 예술감독(60)이 요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소리’다. 깊고 맛있는 소리에 대한 갈증이 밖으로 배어나온 탓일까. 연습실에선 매일같이 단원들에게 “탁탁, 소리 끊는 맛이 없다”며 지적하고, 연출가와 음악감독에게는 “소리의 맛을 절대 잃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창극에서 극(劇)보다 창(唱)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 그런 그가 예술감독 부임 약 1년 만에 신작 ‘춘향’으로 ‘귀 명창’ 관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직접 작창을 맡아 섬세한 소리를 엮어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만난 유 감독은 “아무리 좋은 악기 소리나 연주라도 사람의 목구멍 악기에서 나오는 감흥을 따라갈 수가 없다. 창극의 연극·음악적 요소를 잠시 뒤로 놓고, 소리를 좀 더 보여 드릴 것”이라고 했다.
“왁자지껄하고 경쾌한 서곡으로 시작하는 이전의 ‘춘향’과 달리 이번에는 방에서 춘향이가 단장하는 정적인 장면으로 시작해요. 김명곤 연출가와 협업해 고전에 기초하되 극, 캐릭터, 음악을 변주했어요. 오늘날 젊은이들의 밝고 건강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 드릴 겁니다.”
그가 짠 소리는 기교가 다양한 만정제 ‘춘향가’를 중심으로 했다. 동초제·보성소리에서 장면에 어울리는 선율을 가져왔으며 원작에 없는 장면은 김성국 음악감독이 작곡했다. 만남 사랑 이별 고난 희망으로 구성된 다섯 부분 중 이별에서부터 본격적인 소리의 맛을 살렸다.
당초 스승 안숙선 명창에게 작창을 의뢰했으나 “나한테만 의지하지 말고, 알아서 잘 짜서 해보라”는 조언에 얼떨결에 직접 맡았다. 그는 “작창을 해보니 제가 단원 시절 선생님들이 답답해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며 웃었다.
춘향과 개인적 인연도 깊다. 유 감독은 만정 김소희 명창의 대표 제자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다. ‘춘향’으로 당대 최고 여성 소리꾼의 명맥을 이어온 그는 1988년을 잊지 못한다.
지난해 공연한 창극 ‘심청가’에 출연한 유수정 예술감독. 스승 안숙선 명 창과 함께 도창(導唱)을 맡았다. 국립극장 제공
예술감독 이전에 소리꾼인 그가 소리의 뿌리인 완창에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하다.
“내년 정도 슬슬 준비해야죠. 제 목이 옛날 같지 않지만 이유 불문하고 ‘무대에 서면 소리 참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14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 원. 8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