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내 삶 속 동아일보] <11> 영화감독 임권택
동아일보를 보는 임권택 감독. 그는 “매일 아침 동아일보 읽는 게 습관이 돼 여행 가서 신문을 못 보면 허전하다”고 했다. 용인=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만난 임권택 감독(86·사진)이 거실 한쪽에 쌓여 있는 동아일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1993년 ‘서편제’는 전국에서 350만 명 넘게 관람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당시 중앙일간지로서는 이례적으로 사회면에 ‘우리 것’의 소중함을 일깨운 영화로 서편제를 소개했다. 이 기사는 개봉 직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서편제에 관객이 몰리는 도화선이 됐다.
“학교 선생님들이 서편제를 보라고 권했고 학생들의 단체 관람이 이어졌어요. 김영삼 대통령, 김수환 추기경도 서편제를 관람하고 제작진과 배우들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영화를 밥 먹고 사는 수단으로 여겼는데 그렇게 많은 관객을 만나면서 영화를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일민예술상 받고 4개월뒤 칸에서 감독상… 어마어마한 해” ▼
“언론사에서 주는 큰 상을 처음 받게 돼 깜짝 놀랐습니다. 동아일보가 어떤 신문입니까. 그 험했던 왜정 때 독립운동을 보도하고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했잖아요. 박정희 정권 때 백지 광고 사태를 겪었고요. 그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언론사가 영화감독에게 상을 주다니…. 참 좋았습니다.”
임 감독은 일민예술상이 주목한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감독상을 거머쥔 것이다. 그는 “2002년은 내게 어마어마한 해였다. 돌이켜보면 일민예술상을 받으며 시작한 2002년의 좋은 기운이 칸 영화제까지 이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신군부의 언론사 강제 통폐합으로 동아방송이 마지막 방송을 한 1980년 11월 30일 임 감독은 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고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1934∼2008)과의 추억도 많다.
“흥이 많으셨던 회장님은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어요. 서편제를 만들 때 판소리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관심을 가져주셨지요. 큰 힘이 됐습니다.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1기를 회장님과 함께 다니기도 했답니다.”
임 감독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현관문 앞에 놓인 동아일보를 직접 챙겨와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40년 넘게 동아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 기사 두루두루 다 봅니다. 아내는 문화 국제 뉴스를 주로 읽어요. 오후에는 손자 지우와 놀고요.(웃음) 매일 신문을 봐서 세상 돌아가는 걸 알지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안 읽은 신문은 다 챙겨 봐요. 종이에 인쇄된 글씨를 읽는 걸 즐깁니다. 책을 살 때도 서점에 가서 손으로 책을 집어 들고 이리 저리 살펴본 다음에 구입해요. 그게 재미니까요. 신문, 책처럼 종이가 지닌 특유의 촉감을 좋아합니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우는 임 감독이 신문, 책을 볼 때면 “할아버지 공부하고 계세요”라고 다른 가족에게 말한다. 동아일보에 보도된 임 감독 관련 기사는 모두 스크랩돼 있다.
“여러 신문에 난 기사를 모았는데 동아일보 기사가 진짜 많아요. 동아일보는 영화 사랑이 유별나게 컸다고 할까요.”(웃음)
신문 기사를 비롯해 임 감독이 받은 트로피, 상, 자료 등은 모두 동서대 임권택영화박물관에 있다. 그는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 석좌교수다.
“동아일보는 굵은 물줄기를 이루며 굽이굽이 살아온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신문입니다. 그런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용인=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