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받기 위해 입국하는 남수단 출신 글로리아 간디 양. 한국인 선교사 제공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이들 사이로 낯선 얼굴이 보였다. 남수단 어린이 글로리아 간디 양(4). 한국인은 아니지만 글로리아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나왔다. 한국에 가는 이유를 묻자 긴장한 표정으로 아빠 손을 꼭 잡고 기자를 빤히 쳐다봤다. 동행한 지인은 “겁먹을까 봐 아직 병원에 간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글로리아가 한국에 가는 이유는 식도 쪽에 걸려 있다가 폐와 심장 사이로 넘어간 작은 금속조각을 빼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서다. 글로리아는 지난해 8월 남수단의 집에서 지붕 수리를 하는 중에 떨어진 금속조각을 삼켰다. 병원에 갔지만 ‘남수단에선 이런 수술을 하기 힘들다’는 답만 들었다. 아버지 간디 산토 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지난해 11월 친척이 있는 이집트로 왔다. 하지만 이집트에서도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병원은 찾지 못했다.
그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의 대중에게 한국은 제조업과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대중문화가 매력적인 나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 등 엘리트 그룹에선 오래전부터 한국에 대해 가장 부러워하는 점으로 ‘뛰어난 보건의료 인프라’를 뽑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료인 양성 노하우 △응급 의학 인프라 △건강보험 제도 △국가 혈액관리 시스템 등이 큰 관심을 받아왔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는 한국의 감염병 대응 및 방역 역량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엘리트 그룹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부는 코로나19를 통해 나타난 한국 사회의 의료진 응원 및 존중 문화에 놀라고, 이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코로나19 확산 뒤 금호타이어 카이로지사에서 진행한 ‘의료인(의사, 간호사, 약사) 특별서비스 제공’ 이벤트는 의료인 존중 문화가 약한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이처럼 한국의 의료 역량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때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개도국 대상 의료 원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한 극소수의 나라 중 하나인 한국의 국제사회 기여를 새롭고 특별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세형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