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원에 다니는 조모 씨(23·여)는 지난달 20일 서울형 재난긴급생활비로 33만 원어치 서울사랑상품권을 받았다. 조 씨는 그 중 14만 원을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 미용실에서 사용했다. 지난달 9일 역시 재난긴급생활비를 받은 대학생 이모 씨(24)는 치킨을 사먹는 데 다 써버렸다. 이 씨는 “생필품은 용돈으로 사고 평소 좋아하는 치킨을 실컷 사먹었다”고 했다.
서울 경기 등 지방자치단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제공한 지원금을 일부 시민들이 다소 ‘긴급생활비’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소비하는 걸 두고 찬반양론이 일고 있다. “모호한 긴급재정을 투입해 괜히 헛되게 쓰인다”는 지적과 “어떻게 쓰든 자기 마음이다. 지역경제엔 도움이 된다”는 옹호가 맞섰다. 서울은 서울시 거주 가구 중 중위소득 100% 이하가 대상이며, 경기는 주민등록 상 주소지가 경기도인 모든 이가 받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5, 6일 긴급생활비 사용이 가능한 업소 20곳을 돌아봤더니 화장품, 술, 담배 등을 사는 광경을 쉽게 마주할 수 있었다. 서울에 사는 김채현 씨(24·여)도 “화장품 세트 구입을 위해 3만1000원을 선불카드로 지불했다”고 했다. A슈퍼를 운영하는 신모 씨(54)는 “(긴급생활비로) 쌀과 같은 생필품 구입은 거의 보기 힘들다. 대부분 담배를 몇 보루씩 사가곤 했다”고 전했다. 한 40대 시민은 “긴급생활비는 대형마트에서 쓸 수 없는데, 아무래도 동네슈퍼는 물건값이 비싸다. 담배는 어디나 가격이 같아 이게 이득”이라고 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을 두고 반응은 엇갈린다. 소상공인협회는 “시민들이 긴급생활비로 조금은 여유롭게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지역경제 숨통이 트이고 있다”고 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경기 지역 가맹점 매출은 3월 1주차(1~7일)를 기준(100)으로 봤을 때, 4월 매출은 △1주 차 108 △2주차 107 △3주차 122 △4주 차 124 등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생활비 목적이라도 긴급지원금 성격과 전혀 다른 곳에 사용된 사례들이 있는 건 문제가 있다”며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을 제대로 도울 수 있도록 타깃을 정교히 조정했어야 한다”고 평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