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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트럼프 요구 방위비 연간 13억달러… 작년대비 49% 인상

입력 | 2020-05-07 03:00:00

한미 실무팀 합의했던 13%의 4배… 한국정부, 추가 양보 없다는 입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에 요구하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규모가 연간 13억 달러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 한국 측 분담금 대비 49%를 인상하라는 것이다. 한미 양측 협상 실무팀이 잠정 합의했던 13%의 4배에 가까운 인상률이어서 최종 타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한미 양측은 추가 협상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4일(현지 시간)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 정통한 워싱턴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측은 연간 13억 달러 선을 요구하고 있다. 환율 변동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는 제10차 협정에서 합의했던 1조389억 원의 절반 가까운 금액을 추가로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13억 달러는 미국 측이 적용한 환율 계산으로는 전년 대비 49% 증액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 측은 3월 말 트럼프 대통령이 13% 인상안을 거부한 이후 13억 달러를 사실상 최종 금액으로 수정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분담금 요구 액수를) 50억 달러에서 13억 달러까지 상당히 많이(considerably) 낮췄다”며 “미국은 유연성을 보여 왔다”고 주장했다.

협상 교착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들의 압박 발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백악관 브리핑에서 “부자 나라 한국이 더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이 돈을 더 내기로 했다”며 특유의 과장된 화법으로 증액을 압박했다.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4일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최한 한반도 이슈 관련 화상 세미나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매우 유연했다고 생각하며, 이제 한국 쪽에서도 일정한 유연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포괄적으로 타결된다면 한국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이 빨리 처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추가 양보는 없다는 태도다. 한 관계자는 “미국이 초기에 제시한 총액에서 잠정 합의까지 상당 부분을 낮춘 것은 맞지만, 우리 입장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협상에 정통한 다른 소식통은 “잠정 합의 이후로 한미 간에 유의미하게 주고받은 협상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8.2% 올렸는데 올해는 49%?… 방위비 협상 첩첩산중

‘13% 대 49%.’

한국과 미국이 9개월째 방위비분담금협정(SMA)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양측이 제시한 분담금 인상률은 여전히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극적 타결 가능성이 제기됐던 잠정 합의안이 3월 말 파기된 후 처음으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미국 측의 요구안은 한미 양측이 좁혀야 할 간극이 아직도 상당함을 여실히 보여 준다.

4일(현지 시간)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측의 연간 분담금 규모를 2019년 대비 49%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분담금은 1조389억 원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미국 측은 1190원 선의 원-달러 환율을 적용해 내부적으로 13억 달러(약 1조5470억 원) 규모의 분담금을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그대로 수용한다면 한국의 분담금은 지난해보다 5080억 원가량 늘어나며 분담금 인상률은 지난해 8.2%보다 6배가량 높아진다.

미 정부 당국자들은 최근 “미국 측은 협상에서 ‘상당한 유연성(significant flexibility)’을 발휘해 왔다”며 한국의 양보를 촉구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미 정부의 한 당국자는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요구했던) 50억 달러에서 점차 금액을 줄이며 13억 달러까지 요구 수준을 낮췄다”며 한국에 ‘유연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당초 50억 달러 증액은 근거 없이 무리하게 부풀려진 금액이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협상의 기술’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연간 증액률과 물가상승률 등을 따져 보면 지난해에도 한국으로서는 큰 폭으로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제7차 협정(2007년) 6.6%, 8차(2009년) 2.5%, 9차(2014년) 5.8% 등 200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10% 미만의 인상률을 유지해 왔다.

미국 측이 13억 달러를 제시한 근거나 구체적인 항목은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은 지난해 협상 과정에서 이른바 ‘준비태세(readiness)’ 관련 항목의 신설을 요구했으나 한국 측이 “기존의 틀 안에서만 협상할 수 있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하자 막판에 이 요구를 거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불거지자 미국 측이 첨단 정찰자산을 한반도에 집중 전개했던 상황을 거론하며 “이런 비용이 SMA 증액 요구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 미국 측과 잠정 합의했던 13% 이상의 추가 인상은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상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그 금액이 우리로서는 가능한 최고 수준의 액수”라고 강조했다. 미국 측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까지 동의했던 13% 인상안이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부된 후 추가 협상의 동력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재선 캠페인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인 만큼 협상은 11월 대선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