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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는 당적을 가리지 않는다[오늘과 내일/장택동]

입력 | 2020-05-08 03:00:00

지지 정당에 따라 마스크 착용 갈리는 美… 정치 성향보다는 방역 측면에서 판단해야




장택동 국제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물품이 ‘마스크’다. 영국 가디언은 마스크를 “전 세계에서 가장 탐을 내는 물건”이라고 표현했다.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각국이 체면을 불고하고 ‘마스크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을 정도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모든 나라에서 마스크가 각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에서는 “아프지 않은 한 마스크를 살 필요가 없다”(3월 6일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3월 20일 시베트 은디아예 프랑스 정부 대변인)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마스크 착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마스크는 병에 걸린 사람이 쓰는 것이라는 인식,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면 의료진이 사용할 마스크가 부족할 것이라는 현실, 마스크가 코로나19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제 유럽에서는 사정이 많이 바뀌어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은 대중교통 등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포르투갈과 벨기에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 벌금까지 물린다. 유럽 국가들이 마스크의 필요성을 받아들인 것은 경제활동 재개와 연관이 깊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봉쇄조치를 취하자 경제난이 심각해졌다. 봉쇄를 풀어서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아직 백신이나 확실한 치료제가 없다. 전장에 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로서 마스크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세계에서 코로나19의 확산이 가장 심각한 미국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상반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조속한 경제활동 재개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오히려 봉쇄를 유지하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개인적인 기호와 신념에 따른 차이도 있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반 여부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 회복을 위해 조속히 봉쇄령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나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실제 그는 공식석상에서 한 번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마스크는 민주당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뉴욕매거진은 평가했다. 이렇다 보니 트럼프와 공화당을 지지하고 조속한 경제 재개에 찬성하는 보수 성향의 시민 중에는 마스크 착용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고, 트럼프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마스크 착용에 찬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사람의 당파를 가리지 않고 옮겨 간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을 기준으로 마스크를 쓸지 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데버라 벅스 미 백악관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조정관의 말은 트럼프 지지자들도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그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봉쇄 해제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도 걱정스럽다. 시위 참가자가 집에 돌아가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감염시킨다면 평생을 죄책감을 느끼며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마스크 착용 여부를 중요한 문제로 여기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캠프는 코로나 걱정이 많은 노령층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빨간색 천으로 ‘트럼프표’ 마스크를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마스크를 안 쓴 사람만 손해를 보게 될 수도 있겠다.
 
장택동 국제부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