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霜殞蘆花淚濕衣, 白頭無復倚柴扉. 去年五月黃梅雨, 曾典袈裟糴米歸.)
서리 맞아 황량한 갈대숲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여읜 한 승려가 눈물을 쏟는다. 작년 5월 춘궁기, 아들은 승복(僧服)마저 전당 잡힌 채 양식을 마련하여 귀가했고 그때 어머니는 장맛비 속에서 사립문에 기대어 아들을 기다렸으리라. 세속의 연(緣)을 끊고 출가하였지만 천륜의 끈은 그렇게나마 잠시 모자 상봉을 맺어주었다. 하지만 이제 스러진 갈대꽃에서 시인이 기억해낸 것은 가난과 세파에 시달렸을 어머니의 씁쓸한 그림자뿐, 아들의 사모곡은 한갓되이 갈대 사이를 휘돌며 멸렬(滅裂)해 갔을 것이다.
시인이 갈대를 마주하고 눈물을 쏟은 데는 연유가 있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한 민자건(閔子騫)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계모의 손에서 자랐는데 계모는 자신의 두 친아들에게는 두꺼운 솜옷을 입혔고 자건에게는 갈대꽃을 누빈 옷을 입힐 정도로 구박이 심했다. 후일 이 사정을 알게 된 부친이 계모의 박대에 분노하여 계모를 내치려 하자 자건이 호소했다. “어머니가 계시면 아들 하나가 추위에 떨지만 어머니가 떠나시면 세 아들 모두가 고생할 것입니다.” 자건의 집안이 계모의 사랑과 함께 화목을 되찾았음은 물론이다. 갈대꽃은 이렇게 모성애와 얄궂은 인연을 맺고 있다. 자건의 지혜와 더불어 어딘가 애처로움이 뭉근하게 묻어나는 갈대꽃 사연은 후대의 여러 효자전이나 연극 등에 자주 등장한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