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와 최모씨 변호인단은 6일 부산지법 앞에서 A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최씨의 정당방위와 무죄를 인정해달라”고 촉구했다. 2020.5.6 © News1
56년 전 성폭력을 시도한 남성의 혀를 깨물어 실형을 선고 받았던 최모씨(74·여)가 최근 재심을 신청하면서 재심 개시 가능성과 비슷한 판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형사소송법 420조에 따르면 재심은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 흠결 사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 선고 받은 자의 청구로 진행된다.
법원은 적절한 사유가 있을 경우 재심 결정을 내리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청구를 기각한다.
지난 6일 재심을 신청한 최씨 측 변호인단은 “수사과정에서 위법성이 여러가지 확인된다”며 재심사유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김수정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최씨 진술에 따르면 검찰은 피의자로 조사를 받으러 온 최씨를 구속한 채 진술 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았고, 고의로 혀를 자른 것 아니냐며 자백을 강요했다”고 위법성을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은 최씨가 침해받은 법익에 대해서도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기처분권이라는 인권과 신체 안전이 아닌, 정조로 보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재판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성인지감수성을 인정하는 최근 법원 판결을 의식한 듯 김 변호사는 “최근 법원에서 언급되고 있는 성인지감수성은 시대 변화에 따라 대두된 새로운 가치가 아닌 보편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법원이 재심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고, 당시 수사기록이 남아 있을 지도 의문인 점 등을 근거로 속단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씨의 재심신청으로 그동안 비슷한 사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에도 관심이 모인다.
최씨 측 양성우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지목돼 실형을 선고 받고, 재심을 청구한 사례가 흔치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유무죄의 판결이 갈린 경우는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판결 이후 여성의 성폭력에 대한 자기방어권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대법원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고자 한 행위”라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1990년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란 작품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작품의 원작과 각본을 쓴 인물이 2018년 성폭력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윤택 연극연출가란 점이다.
반면 2017년 함께 술을 마시고 강제 입맞춤을 시도한 남성 A씨(46)의 혀를 깨물어 살점 2cm가량을 잘라낸 여성 B씨(56)에게는 중상해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여성 B씨는 “남성이 얼굴을 때린 후 멱살을 잡고 강제로 키스하려 했기 때문에 혀를 깨문 건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입은 상해의 정도가 중하고 피해자와 합의하지도 못했다”고 판단했다.
한편 재심을 청구한 최씨는 당시 18세였던 1964년 집 근처에서 한 남성(당시 21세)이 성폭력을 시도하자 혀를 깨물어 1.5cm 정도를 잘랐다.
법원은 이 일로 중상해죄를 적용해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당시 강압적인 수사과정에서 검찰에 수차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아무런 고지 없이 구속돼 6개월 동안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고도 호소하고 있다.
(부산=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