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마트 의류업 종사자는 물론 약사, 영어강사, IT회사 직원도 해고당해 ●3월 실업급여 신청자는 전년 비해 29.4% 증가, 전국 평균보다 웃돌아 ●일자리 몰린 청담동 패션거리도 피해…“비싼 월세, 어떻게 감당하나”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앞을 걷고 있는 사람들. [이현준 기자]
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고용노동부 산하 강남고용복지플러스센터(이하 강남고용센터)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A(38·삼성동) 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지난 3월 말까지 청담동 소재 한 패션회사 면세사업부에 근무했다. 국내 의류업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충격을 크게 받은 업종 중 하나. 의류업계 ‘빅3’로 불리는 세아상역, 한세실업, 한솔섬유와 그 뒤를 잇는 신성통상, 신원, 풍인무역 등이 지난 3월부터 연봉 삭감과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내수 악화와 수출 절벽 탓이다.
A씨 회사도 마찬가지. 지난해 12월부터 월급을 제때 주지 못했던 회사는 코로나19로 상황이 더 악화되자 2월과 3월 200여 명을 해고했다. 해고된 직원들이 A씨에게 온갖 하소연과 비난을 쏟아 부어 그는 2월부터 석 달간 아예 휴대전화를 끄고 살 정도로 맘고생을 했다.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기 위해 회사에 휴직 얘기를 꺼냈던 그는 해고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A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사람 뽑는 곳이 없다”며 “기존 연봉보다 덜 주는 곳이라도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실직 대란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고용보험통계에 따르면 3월 전국 실업급여 수급자는 61만8081명으로 전년 동기(51만4466명)보다 20% 증가했다. 실업급여액도 크게 늘었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3월 실업급여 지급액은 8982억 원으로 전년 동기(6397억 원) 대비 40.4%나 급증했다.
이번 위기는 경제 활동이 가장 왕성한 서울 강남도 피하지 못했다. 3월 강남구의 실업급여 신청자는 1072명으로 전년 동기(828명)에 비해 29.4% 증가했다. 이는 서울 전 자치구의 평균 증가율(27%)은 물론 전국 평균 증가율(24.6%)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강남구의 3월 실업급여 수급자는 4149명으로 전년 동기(3237명)에 비해 28% 증가했다. 이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강동구(3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세다.
강남고용센터는 서울 강남구 주민을 대상으로 실업급여?취업알선?직업능력훈련 등 고용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오전 9시 찾은 이곳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10개 창구는 모두 민원인으로 만원이었고, 담당 직원들의 전화벨은 수시로 울렸다.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시부터 대기 줄은 더 길어졌다. 엘리베이터는 실업급여 창구가 위치한 8층에 끊임없이 멈춰 섰고, 긴 대기시간에 지쳐 자리를 뜨는 민원인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강남 실업자들은 “강남 산다고 다 부자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미혼인 A씨는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75만 원인 원룸에 살고 있다. 부자라서가 아니라 회사 가까운 데서 사느라 강남주민이 됐다”고 했다.
박모(61·논현동) 씨는 “정년퇴직을 했음에도 자녀를 부양하게 생겼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의 한 마트에서 매장관리업무를 하다 지난 4월 정년퇴직한 그는 30대 딸과 함께 논현동 전셋집에서 산다. 딸은 강남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 일을 한다. 박씨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딸의 수입이 0원이 됐다. 내가 받는 실업급여로 월 70만 원의 전세자금 대출이자를 내고 딸도 먹여 살려야 하는 형편”이라며 난감해했다. 그는 “집값이 싼 동네를 찾아 강남에서 나가고 싶지만, 딸이 자기 일 때문에 강남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아 고민”이라고도 덧붙였다.
강남에 몰린 일자리 때문에 강남 떠나지도 못해
서울 강남구에서는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병원, 약국, 식당 등 서비스 업종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동아DB]
이른바 ‘전문직’도 코로나발 실직 대란에서 열외가 아니다. 한 약국에서 ‘페이약사’(약국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약사)로 1년 2개월간 일했던 주모(30·대치동) 씨는 “약국장과 나, 둘이 약국을 꾸려갔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병원 처방건수가 30% 이상 급감해 내가 관둘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주씨는 부모 집에 거주하기 때문에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진 않지만, 장래가 걱정이다. 당장 실업급여로는 매월 150만 원씩 부어온 적금을 이어갈 도리가 없다.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약국이 많아 페이약사 급여가 100만 원 이상 낮아졌다고 한다”고도 전했다.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3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