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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韓 최초 근대적 판결문 복원 성공

입력 | 2020-05-10 12:54:00

국가기록원, 형사재판원본(1895년) 복원 및 원문 서비스
동학혁명 전봉준·대원군 손자 이준용 등 217명 판결기록




 일본이 동학농민군 재판에 관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형사재판 판결문이 복원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형사재판원본’(1895년)을 복원한 후 원문의 천연색 디지털이미지를 10일 공개했다.

이 기록물은 120여년 전 생산돼 종이가 누렇게 변하고 일부 부위는 없어지거나 바스라져 복원이 시급한 상태였다.

기록원은 3개월에 걸쳐 오염을 제거하고 사라진 부위를 한지를 이용해 보강한 후 책에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는 우리나라 전통 제본 방식의 ‘오침안정법’으로 복원시켰다. 기존 외부에 공개됐던 훼손 상태의 흑백 디지털이미지는 천연색으로 되살렸다.

형사재판원본은 갑오개혁기 설치된 법무아문권설재판소(法務衙門勸設裁判所), 특별법원, 고등재판소의 판결문으로 구성돼 있다. 총 217명(분량 217매)에 대한 최종 판결 기록이 담겼다.

특히 지금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재판소인 법무아문권설재판소 판결문 중에는 1895년 3월 29일 전봉준의 형량을 결정한 최종 판결선고서가 있다.

이 판결선고서에는 전봉준이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게 된 배경, 1·2차 봉기의 시작과 그 과정 등 전봉준의 행적이 압축적으로 정리돼있다. 당시 함께 활동한 손화중, 김덕명, 최경선 등의 심문 기록과 폐정개혁요구안, 농민군의 진격 경로도 쓰여 있다.

또 당시 사법부가 일제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경성 주재 일본영사 우치다 사다츠치(內田定槌)의 서명도 확인할 수 있다.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와 1882년 청과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 의해 일본인 관료가 조선인 재판관과 함께 재판에 참여하는 회심 제도가 운영되고 있었다.
법무아문 내에 설치된 임시법원인 특별법원의 판결문 중에서는 대원군의 장손이자 고종의 조카인 이준용이 고종을 폐위하고자 청군과 동학농민군을 끌어들이려 한 역모 사건이 기록돼있다.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복원물은 근대적 재판제도 초기 구(舊) 제도와 혼합돼 있는 모습과 일본이 동학농민군 재판에 관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료”라고 평가했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연구조사부장은 “형사재판원본을 포함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75건이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에 선정돼 향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형사재판원본 복원이 동학농민혁명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 원장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월 11일) 제정 두 번째 해를 맞아 형사재판원본을 복원하게 돼 기쁘다”며 “이번 복원이 국가중요기록물의 안전한 후대전승과 함께 앞으로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형사재판원본은 국가기록포털(www.achives.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종=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