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1943년 7월 26일 오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는 갑자기 자욱한 안개가 끼었고 사람들은 호흡할 때마다 목이 아프고 걸어 다닐 때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이 아팠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이 시절 사람들은 일본군이 화학무기를 살포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정도였다. 이러한 ‘화학’ 안개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식물에도 영향을 미쳐 당시 로스앤젤레스 인근 주요 작물이었던 오렌지의 작황에도 나쁜 영향을 주었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서디나의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식물이 대기 중으로 내뿜는 유기화합물, 특히 파인애플 향을 내는 화학물질에 대해 연구하던 아리 얀 하겐스미트 교수도 실험실에서 기르던 연구 대상 나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이유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자동차 에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질소산화물과 자동차 연료에서 증발된 휘발성 유기화학물이 햇빛에 화학반응을 해 만들어진 오존이 로스앤젤레스의 주요 대기오염물질임을 발표한다.
후속 연구에 의해 하겐스미트 교수의 연구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게 되고, 로널드 레이건 당시 주지사는 1968년 그를 공기자원위원회(CARB) 초대 위원장으로 지명한다. 이후 그는 강력한 대기오염 저감정책의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캘리포니아는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질소산화물을 저감시킬 수 있는 촉매 변환 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고 주유소의 휘발유 증발을 막기 위해 저장시설 개선을 명령한다. 또한 2000년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의무화하고 있는 주유기 유증기 회수 장치를 1970년대부터 의무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 후반부터 휘발성유기화합물의 관리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판단한 캘리포니아의 정책 당국은 질소산화물의 규제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집행한다. 오랜 기간 연구와 정책적 수단을 이용해 폭스바겐의 디젤 자동차 질소산화물 배출량 조작 사건의 자백을 받아낸 기관이 CARB일 정도로 질소산화물 배출 저감에 공을 들여 왔던 캘리포니아는 최근 새로운 벽에 부딪쳤다.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 사이 오존 농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그간 소홀했던 휘발성유기화합물 배출 및 대기화학적 변환 과정에 대한 정책적 연구를 부랴부랴 다시 시작하고 있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종류도 많고 화학분석이 쉽지 않아 배출량 통계에 가장 큰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물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특히 톨루엔 같은 방향족 물질 등 많은 휘발성 유기화학물이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배출량에 비해 훨씬 높은 농도가 관측되고 있어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여름 식물들이 내뿜는 휘발성유기화합물의 배출량도 정확히 파악되고 있다. 문제가 터지고 나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문제들은 현장에 있는 누군가는 인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에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문제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할 때, 이 사회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